1)한국의 4월, 왜 더 잔인할까요?
2)<황무지 中>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3)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입니다. 4월이 되면 자주 인용되는 문구이기도 하죠. 겨울 동안 죽은 듯 움츠리고 있던 대지에서, 계절이 생명을 되살리는 모습이 너무나 격할 지경이라서 그런 모습을 역설적으로 '잔인하다'라고 표현한데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4월이 더 잔인한 이유는 아시나요?
4)4월은 날씨가 따뜻해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릅니다.
하지만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에 따른 산불 발생으로 연간 산림 피해면적의 3분의1이 소실됩니다. 산에 오르기 딱 좋은 날씨가 산불이 나기 딱 좋은 조건이라니 잔인하다 할 만 하죠.
5)또한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꽃들은 알레르기도 함께 데려옵니다. 콧물이 줄줄 나고, 기침을 온종일 하며 괴로움에 시달리죠. 비염과 천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4월이 아닐 수 없습니다.
6)아름다운 봄을 만끽하려 하지만 미세먼지와 황사가 상당히 신경 쓰입니다. 멋지게 차려입고 꽃놀이를 가고 싶은데 방역용 마스크를 착용해야 합니다. 꽃놀이 패션의 완성이 마스크라니 끔찍하죠.
7)무엇보다 4월이 잔인한 이유는 우리의 현대사에 있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역사의 아픔은 끝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억해야 할 비극의 역사.
4.3 사건 / 4.16 세월호 사건 / 4.19혁명
8)4.3 사건 - 1948년 4월 3일부터 7년 7개월 간 지속된 이념 갈등으로 인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 속 제주도민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된 사건
애월읍의 한 마을, 스무 채 집의 제삿날은 모두 같습니다. 4.3사건 당시 같은 날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기 때문이죠. 오랜 시간이 지나 올해 70주년을 맞이하였지만 제주의 4월은 여전히 잔인할 뿐입니다.
9)4.16 세월호 –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배가 침몰한 사건. 탑승자 476명 중 172명 구조, 304명 사망/실종
누군가는 세월호 사건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합니다. 승객들을 놔두고 탈출한 선원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회피하고 도망쳐버리는 사회지도층과 닮았습니다.
10)4.19 혁명 –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들이 독재주의에 대항하며 민주주의 운동을 벌인 사건, 독재정권은 총칼을 내세우며 무력으로 시위자들을 탄압.
혁명은 독재정권을 타파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민주적인 세상 뿐이었습니다.
11)그래서 4월이 잔인하기만 하냐구요? 피어나는 꽃들과 점점 푸르러지는 수목을 보면 나이에 상관없이 설레는 달이 4월이기도 합니다.
12)조심해야 할 것도, 가슴시린 역사도 많은 4월이지만, 봄이라는 계절이 더 짧아지기 전에 그저 봄을 즐기는 것도 잔인함을 달래는 방법 아닐까요?
조은채 인턴기자 apqq1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