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공동취재단 = 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를 위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아침 일찍 굳은 악수로 만남을 시작한 양 정상은 해질녘 오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며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쯤 청와대를 출발해 9시경 회담장인 판문점 평화의집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은 현장에서 관계자들을 격려한 후 자유의집으로 이동했다. 하늘색 넥타이를 맨 문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과 이야기를 나눴다.
자유의집 앞에서 대기하던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오전 9시27분 북쪽 판문각 출입문을 통해 모습을 보이자 MDL 방향으로 이동해 높이 5cm, 너비 50cm의 콘크리트 경계석 앞에 위치했다. MDL 쪽으로 천천히 걸어온 김 위원장은 마침내 판문점 내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와 T3(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 사잇길에서 마주쳤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판문점공동취재단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콘크리트 경계석을 넘어 북측 땅을 잠시 밟은 후 다시 우리 측으로 이동했다. 양 정상은 북쪽 판문각과 남쪽 자유의집을 번갈아 바라보며 기념촬영도 진행했다. 김 위원장도 문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MDL을 넘어 남쪽으로 넘어왔다. 분단 이후 북한 최고지도자의 최초 방남이다.
양 정상은 좌우로 도열한 우리 측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자유의집 우회도로를 걸어 130미터 가량을 걸어 공식 환영식장까지 이동했다. 전통악대가 선두에 섰고, 뒤쪽엔 호위기수가 따랐다. 두 정상의 양쪽에 각각 호위무사가 함께 해 전체적으로 장방형 모양을 이뤘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정상이 전통 가마를 탄 모양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정상은 우리 측 국군의장대를 사열하기 위해 오전 9시40분쯤 회담 장소인 판문점 평화의집 옆에 마련된 사열대로 이동했다. 사열대에 오른 두 정상은 의장대장의 경례를 받은 후 단상 아래로 내려가 의장대를 사열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우리 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판문점공동취재단
사열이 끝난 후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우리 측 수행원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의 소개에 따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경두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이 김 위원장과 인사를 나눴다. 이후 김 위원장이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철·최휘·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북측 수행원을 문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이후 양 정상과 수행원들은 회담장소가 마련된 평화의집으로 이동하기 전 기념촬영도 실시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양 정상은 평화의집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방명록에 서명했고, 로비에 걸려있던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에서 기념촬영을 한 두 사람은 한동안 그림을 주제로 대화도 나눴다. ‘북한산’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는 북측 최고 지도자를 서울의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2층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한 양 정상은 수행원들과 함께 오전 10시15분부터 11시55분까지 약 100분간 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을 마친 양 정상은 한 목소리로 회담 결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오전 회담 마무리 발언에서 “아주 오늘 좋은 논의를 많이 이뤄서 남북의 국민들에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이제 시작에,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겠지만 오늘 첫 만남과 이야기 된 게 발표되고 하면 기대하셨던 분들에 조금이나마 기대를, 만족을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오전 회담 마무리발언하고 있다. 사진/판문점공동취재단
회담을 마치고 양 정상은 각자 오찬을 하고 휴식을 취했다. 실무진들은 오전 회담 결과를 토대로 정상선언문을 가다듬었다. 양 정상의 공식일정은 오후 4시30분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소나무를 심는 공동 기념식수 행사로 재개됐다. .
평화의집 내에서 대기하던 문 대통령은 오후 4시22분쯤 평화의집에서 나와 기념식수 장소로 먼저 이동했으며 김 위원장은 판문점 북측에서 차량으로 다시 MDL을 넘어 방남했다. 기념식수 행사에서 남북 평화와 협력의 의미를 담아 김 위원장은 한라산, 문 대통령은 백두산의 흙을 기념 식수에 사용했다. 문 대통령은 대동강, 김 위원장은 한강 물을 각각 나무에 뿌려주기도 했다.
공동 식수에 사용된 소나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생 ‘반송’이다. 땅에서 여러갈래 줄기로 갈라져 부채를 펼친 모양으로 자라며, 정전 후 65년 간 아픔을 같이 해왔다는 의미와 함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첫걸음을 상징한다. ‘대결과 긴장’을 상징하는 땅이었던 MDL 위에 ‘평화와 번영’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함께 심어 전쟁이 갈라놓은 백두대간 식생을 복원하는 의미도 담았다.
파주 화강암으로 만든 식수 표지석에는 한글 서예 대가 효봉 여태명 선생의 글씨로 ‘평화와 번영을 심다’는 글귀를 새겼다. 글귀는 문 대통령이 직접 정했으며 표지석에 양 정상의 서명을 담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남측 군사분계선 인근 ‘소떼 길’에 소나무를 공동 식수 하고 있다. 사진/판문점공동취재단
공동 식수를 마친 두 정상은 MDL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눴다. 도보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원회(당시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스위스, 스웨덴)가 임무 수행을 위해 짧은 거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습지 위에 만든 다리다. 비가 많이 올 때 물골이 형성돼 멀리 돌아가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1953~1960년 사이 설치됐다.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원래 일자형이던 다리를 T자형으로 변경해 MDL 표식물이 있는 곳까지 연결했다. 양 정상은 남북 분단의 상징인 표식물 앞까지 함께 산책하고 배석자 없이 함께 40분 가량 담소도 나눴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실상 단독회담으로 도보다리가 ‘평화, 새로운 시작’의 역사적 현장이 되길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정상은 담소를 나눈 후 도보다리 길을 다시 걸어 평화의집으로 이동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판문점공동취재단
평화의 집에 도착한 양 정상은 5시58분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서명식을 가졌다. 선언문에는 남과 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고,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나가기로 했다. 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외에 남북고위급회담 재개와 남북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과 적십자 회담,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 중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서명식을 마친 양 정상은 서로를 포옹하고 굳센 악수를 나누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 공동번영의 문을 연 서로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한 뒤 서로 포옹하고 있다. 사진/판문점공동취재단
판문점공동취재단 =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