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울-평양’ 표준시 통일을 전격 제안한 건 남북 간 각종 교류 사업을 염두에 둔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9일 오전 춘추관 브리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서울 표준시보다 30분 늦는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발표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내외 간 환담에서 “평화의 집 대기실에 시계가 2개 걸려 있었다. 하나는 서울 시간, 다른 하나는 평양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를 보니 매우 가슴이 아팠다”며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왜 자꾸 갈라져 가는 걸 만드는지 모르겠다. 합치려고 해야 한다”며 “남과 북은 같은 땅이고, 이곳에 오기까지 불과 몇 미터(m) 걸어왔을 뿐인데 시간이 왜 이렇게 다른가”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건 같은 표준시를 쓰던 우리 측이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며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해도 좋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북측도 과학기술 강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안다”며 “표준시 외에도 남북 간 표준이 다른 것들이 있는데 맞추어 나가자”라고 화답했다.
윤 수석은 “표준시의 통일은 북측 내부적으로도 많은 행정적 어려움과 비용을 수반하는 문제”라면서 “김 위원장이 이렇게 결정한 것은 국제사회와의 조화와 일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이자 향후 예상되는 남북, 북미 간 교류 협력의 장애물들을 제거하겠다는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환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초 남북한은 모두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일본의 표준시 ‘동경시’를 써왔다. 그러나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이 되는 해인 2015년 8월15일 “일제에 의해 말살됐던 우리나라의 표준시간을 되찾기 위한 조치”라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동경 127도30분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변경했다.
한국도 과거 대한제국 시절인 1908년 동경 127도50분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동경 표준시로 바뀌었다. 1954년 다시 127도50분 표준시로 복귀했지만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안보·경제상의 이유로 다시 동경시로 돌렸다.
역사·민족의식만으로 판단한다면 북한의 결정이 옳은 셈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실리적 이유로 동경시로 환원하는 통 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27일 정상회담 때도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과정에서 표준시 때문에 취재 혼선이 빚어지는 등 남북의 시간차는 현실의 문제였다.
김 위원장의 이번 결단은 남북 간 교류협력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이며, 특히 남북이 시행키로 합의한 동해선과 경의선 연결이 탄력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과 평양이 열차시간표에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사용해 초래될 수 있는 혼란과 비효율을 사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 1조6항에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개성공단 등 남북경협)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동해선은 부산에서 출발해 북한을 관통해 러시아와 유럽까지 달리는 노선이지만 남측에서는 강릉∼제진(104㎞) 구간이 단절돼 있다. 경의선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길이 518.5㎞ 복선철도다. 물리적으로는 연결돼 있지만 지난 2008년 이후 방치돼 철도 보수 및 정비가 시급하다.
북한은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표준궤를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및 러시아와도 연결돼 있다. 즉 남북을 연결하는 한반도횡단철도(TKR)가 현실화되면 세계 최장의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나 중국횡단철도(TCR), 몽골횡단철도(TMR) 등과 연결해 물류수송의 획기적 변화가 기대된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도 연결된다. 정부는 동해권은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은 산업·물류·교통을 중심으로 한 경협벨트, 접경지역인 비무장지대(DMZ)는 평화의 환경·관광벨트로 개발을 추진하고 신북방정책과도 연계한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자료/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