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까지 삼킨 대기업)①새벽시장도 잠식하는 재벌기업…시장 '민초'들 한숨

식자재유통시장에 자본공세…수십 년 생업 뺏길 위기

입력 : 2018-05-04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트럭에 과일과 야채를 싣고 다니던 장사꾼들을 근래에 본 적이 있나. 대기업이 식자재유통시장까지 발 뻗은 뒤 우리 같은 상인들과 민초들 삶은 피폐해졌다. 수십 년간 농산물을 유통하던 생업을 다 빼앗길 지경이다."
 
3일 구리농산물도매시장에서 만난 한 도매상인의 하소연이다. 농산물을 근간으로 한 식자재유통시장이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잠식되고 있다. 영세상인들은 속수무책이다.
 
대형마트와 SSM 등 대기업 소매점들로 인해 골목슈퍼와 전통시장 피해가 이미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여기에 중간 유통단계에 있는 도매상인들까지 상권 침탈 문제를 겪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비자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 시장 침투가 더 본격화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실제 식자재유통시장에 진출한 대기업은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삼성웰스토리, 현대그린푸드, 아워홈, 대상베스트코, CJ프레시웨이, 신세계푸드, 동원홈푸드 등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모두 식자재 유통에 뛰어들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통계는 없지만 업계는 식자재 유통 시장 규모가 약 13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드는 이유다. 그 속에 영세 도매상인들의 피해 규모는 구체적으로 집계되진 않는다. 이들은 유통 단계에서 집계되지 않는 시장 참여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요 지역을 거점으로 한 공영 농산물도매시장의 중도매상인들은 심각한 피해를 호소한다. 이들은 대부분 농민들과 수십 년간 신뢰를 구축하며 매일 새벽 경매를 통해 식자재 유통을 업으로 삼았지만 대기업의 시장 진입 이후 일감을 잃고 있다.
 
구리시장의 한 도매상은 "주로 거래하던 납품처들도 대기업들이 낮은 납품가를 약속하며 계약해지를 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중소 도매상인들은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어 폐업하는 상인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상인은 "우리 같은 상인을 거치지 않고 유통단계를 줄여 저렴하게 제품을 공급한다는 게 대기업들의 논리"라며 "그러나 실상은 수수료와 마진을 모두 붙여 피해는 우리뿐 아니라 농민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적극적인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다. 앞서 지난 2013년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대기업의 식자재 공급으로 인해 중소업체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며 식자재 도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줄 것을 동반성장위원회에 신청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정부가 유통단계 축소와 경쟁 촉진이라는 이유로 도매업의 진입장벽을 낮춰 대기업의 상권 침투를 용인해줬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기업들의 식자재 도매업 확대는 앞으로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급식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식자재유통사업에서 수익을 창출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어서다. 최근 대기업들이 지방 곳곳에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있는 점도 영세상인들에겐 불안요소다.
 
아워홈은 경기 광주와 안산 등 전국에 14곳, CJ프레시웨이는 경기 이천과 수원 등 전국 12곳, 현대그린푸드도 경기 용인과 광주 등 전국 8곳의 물류센터를 확보했다. 자본과 인프라를 앞세워 식자재유통시장 지배력을 높여가겠다는 전략이다.
 
국회 을지로위원회 관계자는 "식자재유통사업에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골목식당, 전통시장, 골목슈퍼에 납품해오던 중소유통도매상인들이 내몰리고 있다"며 "여기에 대형마트까지 나서 골목슈퍼에 납품하는 상품공급사업(도매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반성장위원회에 적합업종을 신청한 지 수년이 흘렀지만 결과는 나오고 있지 않다"며 "이제라도 상인들의 상권 보호를 위한 제대로 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도매시장 거래체계. 대기업의 시장 침투 이후 도매과정에 있던 도매상인들의 생업도 흔들리고 있다. 표/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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