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대형마트 여성 노동자가 정치에 도전했다. 민중당의 김진숙 서울시장 후보의 얘기다. 김 후보는 지난달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를 밝히며 "일하는 사람들의 직접정치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는 2009년 신세계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시작해 2011년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계산원으로 입사했다. 현재는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 후보는 출마 선언문에서 '7530의 직접정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7530은 현재 최저시급을 가리키는 숫자다. 김 후보는 이에대해 "정권이 바뀌었고 국정농단 세력들이 감옥에 갔지만 이것은 딱 '시급 7530원 만큼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돼 작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살 만하지 않다. 월 157만원으로 평균 집값 6억인 서울살이를 감당해낼 가정이 얼마나 있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트 노동자의 삶을 기억하며 노동자와 시민의 직접정치를 꿈꾸는 김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사진/김진숙 예비후보 선거사무실
마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해 화제가 됐다. 출마를 결정짓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민중당은 노동자가 직접정치 하는 사회를 만드는 정당, 자주통일 정당을 창당정신으로 지난해 새롭게 출발했고 창당 이후 처음 맞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중들에게 당의 이념과 정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 3월엔 서울시장 후보를 결정짓는 당내 경선이 있었다. 이상규 전 의원과 선의의 경쟁을 벌였고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영광스럽게도 내가 우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많은 것을 의미하는 순간이었다. 비정규직 청년 여성이 정치 주체가 돼야한다는 메시지였다. 민중당이 현재 얘기하는 진보정치의 노선을 가장 잘 대변하는 후보를 원했던 것이라고 본다. 진보적 지식인이나 엘리트를 통한 대리정치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의 직접정치를 바라신 것 같다. 나는 노동자의 삶을 줄곧 걸어왔다. 백화점 판매사원에서 대형마트 순환근무 일을 하며 협력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노동자로 살았다. 삼중 사중의 착취 설움이 말도 못했다. 홈플러스 계산원으로 입사한 이후엔 14년간 무노조 사업장이었던 홈플러스에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민주노총의 최저임금위원회 활동도 같이 하게 되며 내가 있는 사업장을 벗어나 전국에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해왔다. 서울시장에 도전하게 된 건 아직 변하지 않는 노동현실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긍정적 변화도 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현 정부도 재벌개혁에 대한 점수는 후한 점수를 못 주고 있다. 6.13 지방선거의 판세는 집권여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분석되고 있지만 더 많은 개혁을 이끌어갈 진보정당이 성과를 내야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최근 신세계와 롯데 등 유통재벌들이 이른바 워라밸을 표방하며 처우개선에 나섰는데 오히려 논란이 더 많다. 어떻게 바라보나?
신세계 이마트가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다며 주 40시간에서 주 35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인다고 했다. 당시에도 노조의 반발은 있었다. 알려졌다시피 이마트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근무시간이 줄면서 결국 휴게시간이 줄었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다보니 노동 강도는 더 세진다는 게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대형마트 노동현장을 체험한 당사자로서 가장 큰 문제로 느꼈던 건 그만두는 인력이 있어도 충원이 제대로 안 이뤄진다는 점이다. 남은 사람들이 버텨서 일하는 식이 비일비재하다. 간접고용된 협력업체 직원마저도 최저임금이 올랐다는 이유로 대대적 감축이 이뤄지고 있다. 간접고용의 헛점인 셈이다.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기업의 이윤을 높이는 가장 전형적인 사업장이 유통가 현장이라는 점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재벌과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탈도 사회적 문제다. 상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되는데 갈등해결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민중당 서울시당과 나는 최근 현대카드사의 음반(LP)시장 독과점으로 음반판매소상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사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준비 중이다. 2년 전 음반시장에 뛰어든 현대카드는 자본력과 유통망을 활용해 중고음반 대량 구매, 신규음반 독점 등 음반판매상인들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켰다. 현대카드는 파격적 할인과 카드마일리지 할인까지 동원해 원가 수준에 음반을 판매하고 있다. 여기에 음반판매 수익을 넘어 카드판촉의 수단으로 대대적인 할인을 진행하며 소상인들이 버티지 못하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벌기업들이 진입할 경우 소상인들의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에 대해서는 대기업진입장벽을 제도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앞서 말한 음반상인들도 서울시에 중소기업보호업종으로 신청을 했으나 탈락한 사례다. 중소기업보호업종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피치못하게 재벌기업이 골목상권이나 소상인들의 업종에 진출하게 되면 전체 시장 규모가 확대될 순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시장점유율을 적정선으로 유지해 소상인들의 생존을 파괴시키는 일은 막아야 한다. 재벌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은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가 발생한다. 나를 비롯한 우리당은 재벌갑질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소상인들 스스로가 자기 권리를 위해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지원과 연대를 아끼지 않고 있다. 흩어져 있고, 방법을 몰라서 당하기만 해왔던 을들이 힘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사명이다.
군소정당 후보로써 선거환경에 대한 아쉬운점은 없는가?
언론이 균등하게 제대로 다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방정치 시대를 열기 위해 풀뿌리에서 활동중인 진보정당 정치가들이 많은데 소위 악수하는 제도권 정당 정치에만 주목한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으로 반영하고 정책 의제로 다루는 진보정당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 선거를 치루며 안타깝고 어려운 점이다. 미디어와 언론을 통하지 않으면 국민들을 접할수 있는 기회는 한정돼 있다. 본질적으로는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어떤 정치의제가 필요한지 고민할 수 있는 국민들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문제라고 본다. 거대 여야 정당만 앞세우는 프레임 때문에 그동안 우리 정치가 많이 부패해 있었던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최근 서울시민들과 자주 만날텐데 어떤 목소리가 많은가?
일하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을 주로 만나는 편이다. 혹은 광장 같은데 나가서 청년들을 만난다. 지난주 경의선 숲길 공원에 나가 20대 중후반의 청년들을 만났다. 놀란 것은 만나는 여성들 대부분이 육아휴직 좀 제대로 쓰고싶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직 결혼을 안한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채용면접을 보면 결혼 계획을 묻고 남자친구 유무를 묻는다고 한다. 저출산을 우려하지만 실제 현장은 육아를 독려하기엔 정상적이지 못하다. 이 외에도 비정규직, 고용불안, 저임금 등에 대한 시민들의 고민이 많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제로화시대라고 했던 문재인 정부에 기대가 있었지만 노동존중 사회로 얼만큼 바뀌었는지 고민해보면 고용불안 저임금 문제 등 아직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과제가 많다. 최근 정책제안 운동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직접정치를 위한 일환이기도 하다. 나의 공약도 시민과 노동자들 속에서 받은 제안을 통해 반영됐다.
23개월된 아들을 가진 엄마이자 주부라고 들었다. 육아정책에 대한 고민도 있을텐데?
서울시가 특히 워킹맘이 많은데 서울은 집값도 비싸고 물가도 비싸다. 맞벌이가 아니면 안되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이런사람들한테 어린이집 이후의 돌봄에 대한 정부와 시의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 모든 엄마 아빠들이 재정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저임금에 허덕이는 서민들에게 지원이 되는 보육정책이 필요하다. 나의 공약 중 '동단위 마더센터'라는 게 있다. 이미 관악구에 한곳 설치돼있는데 이를 동단위로 설치하자는 것이다. 남성육아휴직도 의무적으로 지원해줘야한다. 엄마들도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조건에서 아빠들의 육아휴직 시도는 사내에서 왕따가 되는 분위기지 않은가. 의무적으로 강제해야될 필요성이 있다. 지키지 않은 사업장에 대한 제재나 처벌을 강제하지 않으면 지금 한국사회 구조에서는 계속 말뿐인 육아정책이 될 것이다.
3선 도전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제 같은 후보자가 될텐데 박 시장에 대해 평가한다면?
물론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다만 근본적 문제는 건드리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컸다. 예를 들어 시에서 추진한 마을공동체 사업, 시민참여형 제도 등이 그렇다. 일 하느라 바쁜 시민들이 이런 것들에 참여할 현실적 여유가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노동자들은 정말 숨 쉴틈 없이 일하고 사업장의 눈치를 본다. 너무 팍팍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 속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이라는 보편적 복지들만으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는 생각이다. 시 차원에서 노동조합을 지원하고 노조를 통해서 삭막한 일터를 바꿀수 있는 것만으로도 획기적인 출발이 된다. 지방자치를 바꿀수 있는 노동정책이 필요하다. 또 시민들의 참여도 좋지만 시민들이 직접 정치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당선이 된다면 1000인 노동자 시민 직접정치 회의를 구성해 서울시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그 내용을 시의회에 제출하는 이런 공약을 내놨다.
최근 한진일가 등 재벌 갑질문제에도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는데
재벌들이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근본적 문제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노조를 하려면 위험한 일이 되고 불순세력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삼성에서 노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고 얼마전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이 발견됐다. 노조파괴 움직임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세계 이마트도 2013년 거의 동일한 문건이 발견됐었다. 이번 한진일가의 갑질도 한진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 기업에 만연한 문제이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를 노동자로 대하는게 아니라. 노예로 대하고 있는 낡은 노동천시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막고 재벌적폐청산위원회를 구성해 반인권 반노동행위에 대해 수사하고 강제할 수 있는 구조로 개혁돼야 한다.
최근엔 자유한국당 규탄 기자회견도 가졌다. 배경이 무엇인가?
정상회담 이후 온세상이 감동했다. 기존의 진보든 보수든 할것 없이 모든 국민들이 판문점 선언을 더이상 되돌아가지 않는 약속으로 만들자는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기득권 정치세력들은 빨갱이 공작, 북풍 공작, 종북 공격으로 여전히 일관 중이다. 그게 아니면 그들이 별로 내세울 정치의제도 없다. 정상회담 관련 홍대표가 끊임없이 망언을 하는 가운데 민중당이 항의한 것이다. 빨갱이 장사 정치는 끝났다. 평화시대가 열리면 자유한국당은 더이상 할게 없다.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본다.
유권자인 서울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출마를 결정하고 시민들을 만나기 전엔 비정규직 노동자의 시장 출마를 황당하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지지를 해준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특별한 사람들이 정치해서 평범한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하는 시대로 흘러왔다. 가장 약자인 서민들이 정치환경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 기득권층이 돼 세상을 움직여왔다. 정치의 힘이 가장 절실한 99%의 '을'들이 1%의 '갑'에게 배려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정치를 햐야할때다. 선거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
지난달 11일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후보와 마트 여성노동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사진/김진숙 예비후보 선거사무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