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진 을의 연대 "창피한 대한항공, 자랑스럽게 바꾸자"

입력 : 2018-05-18 오후 9:49:09
[뉴스토마토 구태우·신상윤 기자] "제가 꿈꾸고 입사했던 대한항공은 창피한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항공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자신을 객실 승무원이라고 밝힌 '메이비'는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 마련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대한항공 입사가 꿈이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입사했다.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다"며 "좋은 조직 문화의 선례를 안착시켜 친절한 비행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발언 도중 감정에 북받친 듯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18일 대한항공과 한진 계열사 직원들이 조양호 회장 일가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이날 오후 7시30분부터 진행된 세 번째 대한항공 촛불집회에는 700여명(경찰 추산 400여명)의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과 시민들이 모였다. 그동안 진행됐던 집회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운집했다. 메신저 익명 채팅방 '대한항공 갑질 불법비리 제보방'에서 추진된 이날 집회 역시 참석자들은 신분 노출을 우려해 얼굴에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주인공이 썼던 하얀색 '가이 포크스' 가면을 착용했다. 조종사 정복과 승무원 유니폼 차림의 참석자들은 '갑질근절 함께해요', 'CHO, You are FIRED!'와 같이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이날 대한항공직원연대에서 제작한 원형 스티커를 몸과 가방 등에 붙이기도 했다. 이 스티커에는 여성 승무원들이 머리에 착용하는 리본과 'FLY TOGETHER 함께해요'라는 문구가 인쇄됐다.
 
18일 대한항공과 한진 계열사 직원들이 조양호 회장 일가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뉴스토마토
 
세 번째 촛불집회는 이날 영화 '화차' 등으로 잘 알려진 변영주 영화감독과 익명 채팅방에서 '무소유'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지난 2번의 집회에서 사회자로 나선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은 비행근무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무대에 선 채팅방 아이디 '킬러조'는 "조 회장 일가는 드러난 범죄 혐의만 보더라도 폭행과 밀수, 관세법, 항공사업법, 출입국관리법 등 엄청나게 많다"며 조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했다. '인피닛'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객실 승무원도 "우리에게는 매뉴얼 지켰나 하더니 그들은 법대로 살지 않았다"며 "우리 힘으로 조씨 일가와 부역자들을 물러내자"고 외쳤다. 이어 "국가기관들은 정확하게 조사하고, 밝혀서 정확하게 죗값을 치르고 물러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차카게'라는 아이디를 쓰는 또 다른 객실 승무원은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며 더 많은 직원들의 참여도 호소했다.
 
시민들과 외국인들도 집회에 참석해 대한항공 직원들을 응원했다. 언론계나 법조계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생 김모씨는 직장 내 갑질 문화를 바꾸기 위해 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내년이면 취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김씨는 "힘들게 취업했는데, 대한항공 직원들처럼 폭언을 듣는다면 속상하다"며 "대한항공 집회로 한번에 바뀌지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객실 승무원이 무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네덜란드에서 온 윌버트 반 데 리더씨는 한국에 온 지 7개월 만에 갑질과 재벌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그에게 대한항공의 갑질 사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네덜란드는 가족경영기업은 있지만, 총수일가가 운영하는 대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 또는 상사가 대한항공 수준의 폭언을 한 걸 본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윌버트씨는 "이 사건이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다면 이사회가 즉각 해임시켰을 것"이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가급적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고 싶고, 설령 이용해도 갑질이 생각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이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는 방식도 기업문화를 바꾸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세 번째를 맞은 조양호 일가 퇴진집회는 이날 집회 구호가 이전보다 익숙해진 듯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이전 집회 영상을 합성한 영상물을 상영하기도 했다.
 
18일 대한항공과 한진 계열사 직원들이 조양호 회장 일가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집회는 집회 참석자들의 도보 행진 시위로 마무리됐다.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과 시민들은 세종로공원에서 1.33㎞ 떨어진 대한항공 서소문지점까지 걸으며 "조씨 일가 간신배들 물러가라 물러가라!"며 조 회장 일가의 퇴진을 촉구했다. 촛불집회가 도보 행진으로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이날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4년 발생한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해 대한항공에 과징금 27억9000만원을 부과하고, 조현아 당시 부사장과 여운진 객실담당 상무에게 각각 150만원의 과태료를 처분했다. 당초 징계 대상인 기장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아울러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이 공식 업무권한이나 직책도 없이 진에어 내부 문서에 모두 75건을 결재한 사실도 확인돼 소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국토부가 '칼피아' 논란을 벗기 위해 뒤늦게 징계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구태우·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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