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꺼렸던 생전 모습처럼 구 회장은 마지막 길도 소탈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 두 차례의 뇌수술을 받은 후 올 초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투병 중에도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으며, 결국 그의 바람대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잠들었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그렇게도 좋아하던 새가 되어 자연 품에 안겼다"고 한 인척은 전했다. 또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아했던 고인의 유지대로 장례는 비공개 가족장으로 간소히 치러졌다. 유족 측은 조문과 조화도 사양했지만 고인을 기리는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은 장례 기간 내내 끊이질 않았다.

 

구 회장의 장례가 재벌 총수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수목장으로 치러진 것도 소탈하고 겸손했던 그의 생전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새와 숲 등 자연을 무척이나 아꼈던 구 회장은 평소 매장 중심의 우리나라 장묘 문화 개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종종 "매장 위주의 장묘 문화로 전 국토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땅이 되고 있다. 전국 명당이라는 곳마다 산소가 만들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목장은 화장 후 유골을 나무뿌리에 묻는 자연 친화적 장례 방식이다. 비석 등 인공구조물 없이 유해를 묻는 나무에 식별만 남긴다. 그가 묻힌 곳 인근에는 평소 즐겨 찾았던 화담숲이 있다. 뇌수술 이후에도 요양을 위해 이곳을 자주 들렀다고 한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라는 뜻의 화담은 구 회장의 아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