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그날, 국가는 없었다"

입력 : 2025-10-30 오전 6:00:00
눈을 의심하고 귀를 의심했다. 3년 전 오늘, 2022년 10월29일 밤의 일이다. 
 
빨래를 개면서 보던 TV 화면 아래로 속보 자막이 떴다. 이태원에서 50여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저 어느 술집이나 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려나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어진 뉴스 속 진실은 참혹했다. 심정지 환자로 보도되던 사람들은 이내 사망자로 바뀌었고, 그 수는 급격히 불어났다. 사고 지점이 어느 특정 장소가 아닌 길 한복판이라는 점은 더더욱 믿기 어려웠다. 그저 내가 꿈을 꾸고 있는가 싶었다.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는 해마다 있었던 일인데 왜 유독 그해에만 인파 관리가 되지 않았던 것인지, 이 단순한 물음에 그 누구도 명쾌하게 답하지 않았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 모두가 침묵을 택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이태원 참사를 애써 외면했던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부가 출범했다. 그 정부에서 뒤늦게 당시 참사의 원인을 짚어본 결과, 명백한 인재였음이 드러났다. 
 
지난 23일 '이태원 참사 합동감사 태스크포스'의 발표에 따르면,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는 경비 인력이 전혀 배치되지 않았다.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는 2년 연속 준비해왔던 '핼러윈 인파관리 경비계획'을 2022년에는 세우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의 관내 지역으로 이전한 대통령실 경비에 집중했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 오면서 집회와 시위가 급증했고,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당연히 여겨졌던 이태원 대신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집회 현장을 지켰다. 
 
'행사 주체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회피했던 용산구청도 대응이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청 상황실 근무자 절반은 전단 제거 작업을 진행 중이었고, 상황실 내근자는 신고 전화를 받고도 무시했다. 
 
이 작은 진실을 알기 위해 유가족들은 1000일을 넘게 기다렸다. 참사 희생자 이상은씨의 어머니 강선이씨는 "윤석열정부 계엄의 전조가 이태원 참사에서 시작했다 생각이 든다"고 말했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었던 사실이 드러날까 무시해왔던 대형 참사의 진실이 결국 그 정권을 쓰러트린 단초가 됐던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3년째가 되서야 정부의 공식 추모식이 개최됐다. 참사가 발생한 날짜와 맞춘 10시29분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사이렌이 서울 전역에 울렸다. 여야 간 고성과 설전이 오가던 국회에서도 이 순간 만큼은 서로를 향한 비방을 잠시 멈추고 한마음으로 묵념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억식의 영상 추모사에서 "그날, 국가는 없었다. 지켜야 했던 생명을 지키지 못했고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을 막지 못했다. 사전 대비도, 사후 대응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또다시 등을 돌리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의 공언대로 국가의 존재 이유에 더 이상은 회의가 들지 않는, 각자도생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본다. 
 
김진양 영상뉴스부장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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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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