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최기철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양 대법원장의 임기 내에 상고법원제를 도입한다는 목표로,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와의 거래에 활용한 대법원 재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계를 비롯한 법조계는 "사상 초유의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정치적으로 오염된 재판 당사자들의 구제를 위한 방안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BH와 효과적 협상추진 필요"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지난 25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대법원은 '상고법원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박근혜 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협조한 사례를 열거했다. 여기에는▲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사건 ▲KTX 승무원 정리해고 사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통상임금 사건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사건 등이 포함됐다.
대법원은 청와대 기조와 판결간 연관성 등을 부인해왔지만 청와대가 신경 쓰고 있는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정부 기조에 맞게 알아서 재판을 처리한 의혹이 드러났다. 적어도 대법원이 청와대 입김을 신경 썼다는 정황이 나온 만큼 당시 해당 재판을 받던 당사자들이 헌법상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논란과 함께 이 과정을 거쳐 나온 판결 효력의 정당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헌법소원 가능하지만 청구기한 도과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적으로 오염된 재판과 불법사찰 등에 대한 행위를 헌법소원으로 다투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면서도 "헌법재판소법상 헌법소원 청구기한인 1년을 모두 지나버렸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 대신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심 청구 문제를 검토해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황 교수의 설명대로, 헌법소원 심판은 헌법소원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 헌법소원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조사단 결과로 드러난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간 '거래기간'은 2015년으로, 이미 1년의 기한이 모두 지났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에 대해 남은 구제방법은 해당재판에 대한 재심 청구뿐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법은 확정판결에 대해서도 재심청구를 인정하고 있어, 이론상으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서도 청구가 가능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심 가능성에 대해 "대법원장이 관련자들을 고발 조치하지 않았다고 하나 직접 당사자들이 없어 헌법소원은 힘들어 보인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의 경우처럼 소송 당사자들의 경우 재심 청구는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렵지만, 이론상 재심청구 가능”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의 ‘상고법원제 도입 거래’에서 활용한 재판은 민형사 사건과 행정사건이다. 현행 민사소송법은 ‘판결법원이 위법하게 구성되었거나 법률상 그 재판에 관여할 수 없는 법관이 관여한 경우’ 등 11가지의 사유에 해당될 때 재심청구를 허용한다. 행정사건 소송은 민사소송 규정을 준용한다. 형사소송법은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 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 재심청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심청구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치적 오염’에 대한 판단의 어려움도 있지만 결국 ‘셀프재판’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적 권력행위’에 대한 헌법소원 가능성
재판 자체가 아니라 대법원 행정작용만 분리해서 본다면 헌법소원을 할 수 있고 그 여파가 재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재판 자체는 헌재법상 어렵다. 재판 행위보다도 대법원의 행정작용 그 자체만 분리해서 보면 사실적 권력 행위로 (청구기한이 지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헌법소원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재판과 관련돼 대법원장이 암암리에 행사한 영향력, 이 사실적 권력 행위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는 가능할 것 같다. 만약에 헌재가 이 헌법소원을 받아들인다면, 문제가 된 재판은 재심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재판 당사자에게는 재심을 청구할 적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 법관들은 손배 청구 가능”
황 교수는 재판 당사자 외에 사찰 대상이 된 판사들의 경우에 대해서는 민사소송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그는 "피해 판사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내는 것이 방법이다. 형사소송은 직권남용에 대한 고의 입증이 법리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민사는 공무원인 판사들이 개인의 부당한 명령과 지시에 대해 따랐으므로 이 경우 권리 침해가 맞고 고의성도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대법원 사찰 피해자인 차성안 전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현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는 관련자들을 고발 조치하지 않겠다는 이번 대법원 결정을 비판하며 따로 소송 제기를 준비 중이다.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제도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거래를 하던 2015년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2015년 신년 인사회장에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양승태 대법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최기철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