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최영지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특정 재판을 놓고 흥정을 벌인 의혹 관련해 해당 재판 당사자들이 대법원에 재심 및 양 전 대법원장 수사 등을 요구하며 들끓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29일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를 보면 대법원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 대응전략을 마련하면서 '(청와대가)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사건에 대해 청구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기대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문건을 작성했다"며 "대법원이 특정 사건 판결을 청와대와 정략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고 '한일 우호 관계의 복원'이라는 모호한 명분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희생시켜 통탄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비판했다.
또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사건은 5년이 넘도록 대법원에 계류됐었다"며 "재판이 지연된 이유가 대법원을 장악한 일부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미쓰비시·신일본제철 사건을 장기판의 졸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은 계류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에 대해 헌법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법상 중대한 인권침해피해자들이 가지는 정당한 배상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왔음을 인정·사과하고 새로운 재판부를 구성해 공정한 심리를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법원의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국제연합(UN) 등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사보고서에 언급된 KTX 해고 승무원들도 이날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기습 점거 시위를 하며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해고 승무원들은 "양 전 대법원장 당시 대법원은 고등법원까지 승소한 KTX 승무원 판결을 이유 없이 뒤집었다"며 "청와대와 거래한 자들은 사법 정의를 쓰레기통에 내던졌고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자본 입맛대로 판결하거나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해고 승무원들은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 구속 수사와 국회 청문회 등을 요구했다.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이 30일 해고 승무원들과 면담할 예정이다.
특별조사단이 지난 25일 발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 당시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박근혜 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협조한 사례를 자평했다. 이 중에 KTX 승무원 사건도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29일 "조사보고서를 보면 법원행정처가 '대한변협 압박방안검토', '대한변협대응방안검토' 등 문건을 통해 법조 삼륜인 변호사단체를 압박 대상으로 보고 대응전략을 논의한 정황이 드러났다. 법관의 독립 및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상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이번 조사 발표에서 빠진 미공개문건 공개, 주요 관련자들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로 대법원 스스로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는 아니지만,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후보도 이날 양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15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소속 법원공무원 3405명도 30일 서울중앙지검에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KTX 해고 승무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로비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기습 점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최영지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