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하자

입력 : 2018-05-31 오전 6:00:00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5월 초 노동자 경영참여 실태와 노동이사제 운영 사례를 배우고자 독일과 스웨덴을 다녀왔다. 한국은 기업의 경영권은 사용자의 독점적인 권한이라는 주장이 강하지만, 많은 국가에서는 참여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확산되고 있다. 참여 자본주의의 핵심은 기업의 경영 관행과 결과가 모든 이해당사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요 의사결정에 자신들의 의견이 고려되고 논의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OECD국가들은 기업의 핵심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보장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19개 국가가 노동이사제, 경영협의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노동자 경영참여는 의사결정참여, 자본참여, 이익참여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자본참여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본의 출자자로서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소유참가, 재산참가라고 한다. 경영참가 중 가장 용이한 유형은 이익참가이다.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이 경영성과를 높이는데 참가하고 그 협력의 대가로 경영성과, 즉 이익의 일부를 임금 이외의 형태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익참여와 자본참여는 경제적 소유의 분배와 관련된 것으로 경제민주주의의 영역에 해당한다. 반면 의사결정참여는 기업의 생산 및 노동의 배치와 관련된 경영사항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를 의미한다. 따라서 '기업경영에 관련된 기업 내 의사결정 및 운영과정에 노동자,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것'을 뜻하는 의사결정 참여를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경영참여라고 한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의 영향력 행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산업민주주의의 영역에 속한다.
 
노동자의 경영참가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 민주주의를 공장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역할을 뜻한다. 정치적 약자가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정치적 민주주의라면 경제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약자가 경제적 의사결정과정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많은 국가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자 경영참여가 갖는 순기능은 참여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품질과 생산성의 진정한 상승은 노동자들의 자발적 협조와 현장의 지식이 동원될 때 가능하다. 두 번째 효과는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보 공유’를 통한 '신뢰의 축적' 효과이다. 참여가 거부되는 조직에서 정보는 어느 일방에 독점된다. 정보가 일방적으로 독점되고 공유되지 못할 때 신뢰는 불신으로 바뀌고 왜곡된 의사소통은 제도화된다. 셋째, '상호 감시'를 통한 자기규제와 조직의 합리화 효과이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량이 증대하면, 게임의 참여자들은 함부로 규칙을 벗어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조직 간 경쟁에서 인적자본이 차지하는 지위가 갈수록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보화시대가 심화될수록 조직의 경쟁력은 지식노동의 생산성에 의존하게 된다. 오늘날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업들이 노동자가 참여하는 다양한 제도들을 도입하는 이유는 조직 성원들의 참여를 통한 지식과 기능의 효과적인 결집만이 조직의 발전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입장에서도 노동자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도 경영참여는 절실하다. 한국GM의 공장 폐쇄 및 철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생산에만 몰두하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적자기업의 노동자가 되고, 구조조정의 책임은 경영진이 아닌 노동자의 정리해고로 이어진다.
 
한국 재벌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엉망진창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총수가 있는 국내 100대 그룹의 오너 일가 가운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3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가운데 10명이 10개 이상의 계열사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었다. 등기이사를 2곳 이상 겸직하고 있는 오너 일가는 전체 조사 대상자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 108명이었고, 이들이 등기이사로 등재된 기업의 수는 평균 5.0개로 집계됐다. 이사회 개최 건수가 한해 15차례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10개 업체의 등기이사에 동시에 등재될 경우 이사회만 150회 가량 참석해야 하는 셈이어서 부실 경영은 우려가 아닌 현실이다.
 
노동자 경영참여운동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길이다. 2016∼7년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촛불’을 타고 사회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유독 직장 문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작동을 멈추었다. 직장 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이 인사와 경영권 등 회사의 주요 결정에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유럽국가 중 가장 탄탄한 경제 성적을 보이고 있는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는 직장평의회와 감독이사회를 통해 노동자가 기업의 주요한 정책결정에 참여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노동자 경영참여를 통한 직장 민주주의의 구현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노동개혁의 핵심 의제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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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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