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회담의 주인공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기의 담판’을 앞두고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두 정상은 공개일정을 최소화하면서 회담전략 준비에 몰두했고, 북미 양측 실무진은 막판까지 의제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김 위원장은 이날 내내 싱가포르 현지 숙소인 세인트리지스 호텔에 머물렀다. 전날 창이공항으로 입국해 숙소로 이동한 뒤 저녁에는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회담했지만, 이날은 숙소에서 머물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후 한때 북한 경비원들의 긴박한 움직임에 김 위원장이 현지 시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외출의 주인공은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었다. 현 단장은 경호원 등 50여명을 대동하고 모처로 이동했다. 일각에선 북미 간 문화교류 혹은 만찬공연을 준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리셴룽 총리와 오찬회담을 하고 오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김 위원장과 만난 경험이 있는 정상들을 통해 김 위원장을 간접 체험하고 북미회담을 대비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 총리와 만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내일 아주 흥미로운 회담을 하게 된다. 아주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는 회담을 앞두고 지금까지 진행된 미국과 북한 사이의 논의 내용을 설명하고, 북미회담 성공을 위한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북미 간 공통분모를 찾아나가고, 온 세계가 바라는 일을 과감하게 풀어보자고 두 정상이 마음을 모은다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두 정상은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등 북미 실무진은 이날 오전과 오후 리츠칼튼 호텔에서 만나 북미회담 의제와 합의문 문구 등을 두고 최종 조율에 나섰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 등 양측 최고위급 인사들도 싱가포르의 모처에서 따로 회동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는 두 정상 간 합의문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CVID)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체제안전보장’(CVIG)을 어느 수준까지 넣을지 두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오후 성명을 내고 “오전의 실무협상을 포함해 우리는 만남을 통해 구체적인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면서 “대통령 역시 정상회담 준비를 잘 마쳤고, 미국의 입장은 명확하며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주요매체는 이날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조·미(북·미) 수뇌 상봉과 회담이 개최되는 싱가포르를 방문하시기 위해 10일 오전 중국 전용기로 평양을 출발했다”며 “최고영도자(김정은) 동지와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 사이의 역사적인 첫 상봉과 회담이 12일 오전 싱가포르에서 진행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조·미 수뇌회담에서는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새로운 조·미 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들을 비롯하여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폭넓고 심도 있는 의견이 교환될 것”이라며 정상회담 의제를 최초로 공개했다.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선명하게 박힌 중국 전용기에 오르는 사진을 게재했다. 신문은 “김정은 동지께서 조미수뇌 상봉과 회담이 개최되는 싱가포르공화국을 방문하시기 위하여 10일 오전 중국 전용기로 평양을 출발하시였다”면서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환송나온 당 및 정부 지도간부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중국전용기에 오르시였다”며 중국 전용기 이용 사실을 공개했다.
북한 매체가 북미회담의 의제를 상세히 밝히고, 최고지도자가 외국 방문에 타국 항공기를 이용했다고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북측이 이번 회담의 성공을 내심 자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대통령궁인 이스타나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회담 및 오찬을 마친 후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