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개개인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차이로부터 발생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루이 쇼벨(Louis Chauvel)은 “만약 사람이 모두 다 동일했다면 불평등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이는 불평등을 유발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물론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생기는 남녀 간의 불평등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평등은 역사사회학의 우발적 산물이다. 따라서 사회 조직의 기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등장으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의 수렁으로 빠지는 것은 이 체제가 얼마나 부자에게 유리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85명이 하위 35억 명의 전 재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는 경제 시스템. 이러한 불합리한 시스템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경제위기와 자연재해, 무능한 공공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22억 명의 남녀를 빈곤의 위험에 빠뜨리고 있고, 이는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유엔이 2014년 7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2억 명은 하루 1.25달러(한화 약 1370원) 이하로 살아가고 있다. 91개 개발도상국에 흩어져 있는 15억 명은 건강, 교육, 생활수준에 있어 누적된 결핍으로 가난한 상태에 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경우는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일부에서는 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 식품을 개발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이 얼마나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아의 주요 원인은 식량 부족이 아니라 돈이 없어 생활필수품을 살 수 없는 것 아니던가.
그러나 잘 사는 나라의 국민들은 먹거리가 넘쳐나 주체할 수 없고 심지어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3일 파리마치에 이를 보여주는 기사가 올라왔다. 식탁 위는 물론 식탁 아래에도 식료품이 가득하다. 5인 가족이 매년 버리는 식료품이 이렇게 주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낭비를 막기 위해 2년 전에 가로법(loi Garot)을 만들어 실시하고 있다. 2016년 2월3일 프랑스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음식낭비를 줄이기 위해 채택한 법이다. 사회당 하원의원 기욤 가로(Guillaume Garot)가 음식물 낭비를 막기 위해 소비자에게 팔다 남은 식료품을 폐기처분하는 대신 의무적으로 식료품 업체와 자선단체 간 협약을 맺어 기증하는 방안을 제안해 법제화한 것이다.
‘버리느니 주어라’는 이 원칙은 곧 레스토랑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과식은 대식가 가르강튀아(Gargantua)의 탄생을 부추길 뿐이다.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뚱뚱한 소의 창자를 조금도 버리지 않고 일부러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먹는 거인을 그려 16세기를 풍자했다. 라블레가 살던 시대에는 아무 것도 버리지 않고 마구 먹고 입맛을 다셔야 할 만큼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484년이 지난 지금 초등학생인 룰라(Lula, 10세)는 산더미처럼 쌓인 식료품 앞에 서 있다. 룰라는 부모와 여동생 빌리(Billie, 7세), 쟁제르(Ginger, 2세)와 파리에서 살고 있다. 룰라네 가족이 매년 버리는 식료품은 128킬로그램이고, 프랑스 가정에서 먹다 남은 식료품양은 매년 2백만 톤에 달한다. 이는 1초 마다 쓰레기통에 63킬로그램을 버리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음식 낭비와 전쟁을 위해 프랑스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도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가정에서는 음식물이 넘쳐나고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폐기되기 직전의 식료품들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대한민국에서는 연간 500만 톤의 음식물쓰레기가 발생하고 있고, 이는 하루 1만4000여 톤의 음식물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셈이다. 이 음식물을 처리하는 데만 연간 8000억원의 비용이 든다.
이러한 낭비 속에 역설적으로 하루 먹거리를 해결하지 못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어야 하는 어른들, 아동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정책은 이들을 외면하기 일쑤다. 빈곤 현상은 아마도 자기 책임보다는 대한민국의 경제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이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우선 음식물이 넘쳐나 낭비하는 사람들은 그 음식을 이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좀 더 큰 실천을 위해서는 한국도 프랑스의 가로법과 같은 법을 만들어 식료품을 폐기 처분하기보다 자선단체에 기증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풍요한 자들의 낭비를 막고 가난한 자들의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당장 국가가 나서라.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