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오는 21일 오전 10시 고발인인 참여연대를 대표해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임지봉(서강대 교수)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20일 밝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시민 고발인단 1080여명과 함께 지난 1월 양 전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임지봉 교수는 당시 고발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는 법원행정처의 파일을 검찰의 강제 수사를 통해서라도 열어서 이번 사법 농단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7개 단체도 지난 5일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고발장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청와대와의 정책 거래를 위해 키코 사건, 쌍용차 경영상 해고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전국철도노동조합 KTX 승무원 사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등 개별 사건에 대한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개별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거나 당시 박근혜 정부의 주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유도한 행위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또 양 전 대법원장 등이 판사들 모임인 인사모나 국제인권법연구회 공동학술대회에 개입하고,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후보 성향 분석과 추천 개입, 상고법원에 대한 반대 의견 표명 법관에 대한 사찰,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선거 개입 등 인사권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특별조사단 3차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김모 전 법원행정처 제1기획심의관이 지난해 2월 본인이 업무용으로 쓰던 컴퓨터와 하드디스크에서 2만4500여개 파일을 삭제해 증거를 인멸했다는 혐의도 제기했다.
이들은 "이 사건은 대법원의 정책 방향을 관철하기 위한 행정처 공무원 한 두명의 일탈 행위가 결코 아니다"라며 "양 전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거대한 관료조직 내 대법원장과 행정처장, 차장, 심의관들로 이어지는 체계 속에서 조직적 지시와 감독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임종헌 전 차장 역시 '우병우 카운터파트는 처장님이다', '이 정도는 실장회의에서 논의했을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며 "그러한 지시-보고-실행의 구체적 실상을 밝히는 것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를 포함한 여러 단체가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고발한 사건은 현재 20건에 이른다. 검찰은 지난 19일 법원행정처에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의 하드디스크 등 자료 제출을 서면으로 요청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사법피해자 공동고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사법농단 수사촉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홍연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