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주재할 예정이던 ‘제2차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전격 연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간 눈높이로 봤을 때 내용이 미흡하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건의를 수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정청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행사를 급히 취소할 만큼 다른 중요한 사정이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회의시작 1시간30분 전인 오후 1시30분 춘추관 기자들을 찾아와 “이 총리께서 ‘준비하느라 고생은 했지만, 이정도 내용은 민간의 눈높이 봤을 때 미흡하다’고 대통령에게 일정연기를 건의했다”며 “대통령께서도 오늘 집무실에서 나오셔서 이 총리로부터 내용 보고를 받으셨고, ‘본인도 답답하다’고 말씀하시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 성과를 반드시 만들어서 보고를 해 달라’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규제개혁의 속도를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속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규제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며 “우선 허용하고 사후 규제하는 네거티브 규제방식 추진에 더욱 속도를 내달라”고 당부했다. 또 이해당사자들의 충돌로 갈등해결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을 10번이든 20번이든 찾아가서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규제개혁과 관련해) 여러 차례 ‘좀 더 과감하고 좀 더 속도감 있게, 산업현장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오늘 준비된 보고내용 자체는 상당히 진전이 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그런 의미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고 부연했다.
총리실도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고 “규제혁신의 폭을 더 넓히고 속도감을 높여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추가적인 내용보강이 필요하다”며 “오늘 집중 논의 예정이었던 빅이슈(핵심규제 2건) 등에 대한 추가협의도 필요하다고 판단돼 총리가 개최연기를 건의해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규제혁신, 미래를 바꾸는 힘’이라는 주제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각 부처 장·차관이 신산업 분야 규제혁신 성과 및 계획을 비롯해 드론산업 육성안, 에너지신산업 혁신방안, 초연결지능화 혁신방안 등을 보고하고 토론할 자리였다. 특히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은 각각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방안과 개인정보 규제혁신 방안 등을 보고하기로 했다.
정부에서는 이 총리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관련 부처 장차관 등이 참석하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추미애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할 계획이었다. 임종석 비서실장 등 청와대 주요인사와 대통령 직속기구 위원장들,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와 민간기업인들까지 집결한 대규모 회의였다.
문 대통령은 회의에 앞서 오후 2시 예정된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 면담도 취소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정이 맞지 않아 취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할뿐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 안팎에선 회의 뿐 아니라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외빈 미팅까지 취소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피치 못 할 다른 사정이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취소로 지난 24일 러시아 순방에서 귀국한 이후 사흘째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5일에는 매주 월요일 오후 2시에 개최하는 수석보좌관회의가 열리지 않았고, 26일 부산 유엔(UN)기념공원에서 열린 ‘6·25 유엔참전용사 추모식’ 참석도 기상악화를 이유로 취소했다.
일각에선 와병설을 제기했으나, 청와대 관계자는 “전 자주 뵙고 있다. (기자들과) 접촉하지 않은 시간이 얼마쯤 되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뵙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문 대통령의 이날 일정과 현재 위치에 대해 “어디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오후 공개일정은 없다”고만 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의 건강에 혹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러시아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24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