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스마트폰 디자인 특허침해 여부를 둘러싼 삼성과 애플의 법적 분쟁이 27일(현지시간) 합의에 이르면서 세기의 소송전도 모두 종결됐다. 앞서 2014년 한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호주 등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양사가 진행해온 모든 특허 소송을 철회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지난해 말 표준기술 특허 소송은 삼성이 애플에 1억196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디자인 특허침해와 마찬가지로 표준기술 특허전에서도 삼성이 애플에 거액의 배상금을 쥐어주며 7년을 끌어온 분쟁이 종지부를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승자는 삼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은 세기의 소송전을 통해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의 유일한 대항마로 부상했고, 시장 1위로까지 올라섰다. 애플이 구글의 행동대장 격인 삼성을 제압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삼성에 대한 지명도만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은 지난 2011년 4월 애플의 디자인 특허침해 제소로 시작됐다. 애플이 주장하는 삼성의 특허 침해 내용은 사각형에 둥근 모서리를 둔 스마트폰 기본 디자인, 액정화면의 테두리, 애플리케이션(앱) 배열 등 3가지였다. 이후 양사 간 소송은 미국을 포함한 9개국으로 확대됐다. 2012년 애플은 '밀어서 잠금해제' 등 3건의 표준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며 삼성을 상대로 2차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2차 소송은 모바일 운영체제(OS)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구글과 애플의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비쳤다.
2014년 8월 양사는 미국 소송 2건만 남기고 나머지 소송은 철회했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 2차전으로 불리던 표준기술 특허 소송은 지난해 10월 미국 항소법원이 삼성에 배상을 명령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법원은 애플에 1억1960억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그해 11월 삼성의 상고도 기각됐다.
양사의 특허전쟁 서막을 알렸던 디자인 특허 소송만이 지속됐는데 법원은 일관되게 삼성의 특허 침해를 인정했다. 삼성은 2016년 애플에 디자인 특허 침해와 관련해 3억9900만달러를 배상했고, 동시에 배상액 산정 기준이 잘못됐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후 대법원은 배상액을 다시 산정하라며 파기 환송해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서 심리가 진행됐다. 지난달 법원 배심원단은 당초 배상액보다 1억4000만달러 많은 5억39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삼성은 판결에 반대하며 "모든 선택지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결국 합의를 택했고, 이에 따라 세기의 전쟁도 막을 내렸다.
양사가 합의를 본 이유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양사에 누적된 소송 피로감이 합의에 이르게 한 주요 요인으로 제시됐다. 스마트폰 시장이 극도로 정체된 상황에서 소송을 계속해서 득이 될 게 없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7년간 진행된 소송전에서 애플은 1심에서 '디자인 특허는 제품 전체나 다름없다'는 배심원 평결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애플로 인해 디자인 특허의 가치도 상승했다. 법원은 제품 외관 등 디자인의 권리를 광범위하게 인정했다. 애플 입장에서는 '스마트폰의 원조'라는 자존심을 지킴과 동시에 삼성을 카피캣(모방꾼)으로 몰아붙이면서 거액의 배상금도 손에 쥐게 됐다.
그럼에도 그간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애플보다는 삼성이 얻은 것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소송전을 거치면서 삼성은 애플의 유일한 적수로 부상했고, 마침내 명실상부한 스마트폰 세계 1위가 됐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1차 소송 직후인 2011년 3분기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분기 판매량에서 애플을 추월했다. 2012년부터는 세계 1위를 굳혔다. 삼성은 애플 견제에 대한 구글의 측면지원도 이끌어내면서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주자가 됐다. 삼성을 향한 스티브 잡스의 분노는 결국 삼성을 라이벌로 성장시키는 동인이 됐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송전의 진정한 승자는 삼성이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뉴욕타임스는 "서류상으론 애플이 이겼지만 삼성에 경쟁우위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또 "애플은 무시해도 될 정도의 이익만 얻고 철수했다"고 했다. 포스페이턴츠는 "애플은 지적재산권을 강화할 준비가 됐다는 걸 보여줬다"면서도 "하지만 삼성은 무서운 방어자란 사실을 입증했다"는 평을 내놨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