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사회적 여건 때문에 낙태하는 여성, 누가 벌할 수 있나.", "고통받는 여성에 위로 대신 비판하는 종교 입장 정당한가."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가운데 서울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역대 최대규모집회가 열렸다.
건강과 대안, 전국학생행진, 한국여성민우회 등 16개 단체들로 구성된 연대모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모낙폐) 소속 1500여명(경찰추산)은 7일 오후 5시부터 서울 광화문광장 모여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했다.
모낙폐는 “낙태죄 폐지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삶에 대한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시작”이라며 “여성들을 처벌함으로써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 장애나 질병, 연령, 경제적 상황 등이 출산 여부에 제약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여건을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집회 내내 참가자들은 ‘국가는 재생산권 침해말라’, ‘여성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특히, 무대에 오른 여성들은 자신의 낙태 경험이나 가까운 이들의 사례를 들어 낙태죄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자신을 천주교 신자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최근 종교계의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운동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여성은 “내 이웃을 사랑하고 어려운 이를 도와주라던 교회 가르침은 왜 여성의 임신중절에는 적용되지 않느냐”며 “교회는 왜 여성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대신 큰 낙인과 비난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50대 여성은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상황을 예로 들며 “정말이지 당시에는 둘째를 낳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며 “임신을 중단한 여성에게 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참가자들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겪는 어려움 때문이라도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크게 호응했다. 오진방 한국 한부모 연합 사무국장이 소개한 한 미혼모 사연에서는 여성에게 임신중절이 왜 필요한지 여실히 드러났다.
사연 속 주인공은 “임신 이후 남자친구는 해외로 도망가고, 임신 중절을 위해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며 “서른두 살의 나이에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내 선택대로 낙태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보호자 허락을 구걸하고, 거짓동의서를 써가며 죄지은 듯하는 낙태는 없어져야 한다”며 “임신도 낙태도 출산도 여성이 결정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낙태죄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계 각국의 여성단체들과 노동자 단체들은 한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제 NGO인 'Women on Waves, Women on Web'의 창립자 레베카 콤퍼츠는 무대에 올라 “임신중지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합법인데, 왜 한국에서만 불법이냐”며 “임신중지는 의료 서비스이고, 의료서비스는 절대 범죄가 아니”라고 말했다.
집회 이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안국동사거리, 인사동길, 남인사마당을 거쳐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모였다. 모낙폐는 향후 토론회를 비롯해 제 2, 3차 집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7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주죄한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조용훈 기자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