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진성 기자] 안종주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안심사회분과장은 30년 전인 1988년 7월 한겨레 신문에서 의학담당 기자로 근무할 당시 인견사(실의 일종)를 생산하는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신경독성 물질인 ‘이황화탄소’ 중독환자가 잇따라 발생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린 인물이다. 당시 직업병의 위험에 방치된 노동자의 권리를 환기시킨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노동계가 추천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직업병판정위원회 설립, 직업병 인정기준 변경 등의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30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은 이제는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살충제 달걀, 라돈 침대 파문 등이 흔한 사례다. 안 안심사회분과장은 이익만 추구하며 소비자의 안전은 나 몰라라 하는 기업, 그 기업을 관리·감독할 의지나 능력이 없는 정부 등의 행태가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사한 비극의 사례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아울러 기업 등의 부주의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시 징벌적인 벌금을 때리는 방안도 모색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안종주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안심사회분과장. 사진/뉴스토마토
원진레이온 사태가 세상에 알려진지 30년이 지났다.
30년전 원진레이온 참사가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신문사로 우연히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됐는데 내용을 듣다보니 이황화탄소 중독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대학원에서 산업보건분야를 공부했었기 때문에 제보가 들어온 증상을 듣는 순간 직업병과 연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마다 직업병과 추락, 질식 등 다양한 산재사고로 숨져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원진레이온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산업현장에서 직업병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직업병은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는 바로 보이지만 ‘이황화탄소’같은 직업병과 관련된 문제는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된다. 문제는 일상생활로 인한 것인지 직업 때문에 발병한 것인지는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피해자가 산업재해를 입증하려면 작업환경 측정 기록 등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기업들은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꺼린다. 쉽게 말하면 의료사고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검찰이나 법원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를 임명해 제대로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산업재해 피해자가 감당할 입증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어줘야 하고 그와 관련해 징벌적인 벌금을 도입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최근 라돈침대 사태를 보면 사회전체가 유해물질로부터 위협받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제가 됐던 침대회사는 그동안 몸에 유익한 ‘음이온’이라고 강조하면서 건강침대라고 홍보를 해왔다. 신제품 개발에 집중하다보니 당시 유행하던 ‘음이온’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침대에서 방사능 물질이 나온다는 것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심각하게 봐야 할 것은 정부는 이미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0년 이전에도 온열매트가 유행했는데, 매트 속 재료로 방사능 물질이 나오는 ‘모나자이트’를 사용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 환경부는 생활방사선법을 만들어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외국산 제품을 수입 판매하려면 반드시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신고하고 등록하도록 하고 관련 매뉴얼도 만들었지만 해당 제품이 어디서 팔리고 있고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등 전반적인 관리가 없었다.
정부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문제가 처음 불거진 후 일주일 정도 지나 정부가 첫 발표를 했는데, 가장 중요한 매트리스는 빼버렸다. 그러다 보니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보다 낮게 나오게 됐고, 이를 두고 일부 언론들은 중소기업 잡는다고 첫 보도한 언론을 성토했다. 하지만 그리고 나서 5일후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그와 반대되는 내용을 발표했다. 다시 조사해봤더니 7개의 모델에서 기준치를 넘어섰다는 내용이다. 초기에 발표를 제대로 못하다보니 국민들의 불안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흔히 말하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된 것인가.
신속하게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아마도 처음 발표가 잘못돼 논란이 생긴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관련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신속하게 공개해야 하는데 문제가 커질까봐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이 오다보니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안종주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안심사회분과장(당시 전국석면환경연합회장)이 지난 2016년 7월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에 참석해 질의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러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결론적으로 정부가 제대로 검증을 못해서다. 그동안 음이온에 대한 제제를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것은 검증된 내용도 아닌데 정부 허가를 받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가령 가습기 살균제도 KC(국가통합인증마크)를 받았었다. 살충제 달걀도 보면 친환경농산물이라고 해서 소비자들이 많이 구입했던 것 아니냐! 내막을 살펴보면 이러한 인증과 관련해 이해관계가 엮여 있다. 민간에 위탁해서 허가 내주고 민간은 돈을 버는 구조인 셈이다. 결국 소비자만 ‘봉’이 됐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가습기살균제 파동을 예로 들겠다. 해당 파동과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환경부 등 수많은 정부부처가 얽혀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정부부처 한 곳이라도 사전에 성분 등을 꼼꼼히 체크했으면 막을 수 있었다. 살충제 달걀 문제도 그렇다. 관련이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식약처 중 누구라도 책임을 떠밀지 않고 농가든 유통된 달걀이든 검사를 철저히 했으면 막을 수 있었다. 이미 소비자단체 등에서 수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대응도 늦었다. 위기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그때서야 잘못을 알게되고 고치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인 셈이다.
컨트롤타워가 역할을 못한다는 의미인가.
지금은 지진이 발생하거나 화재가 났다고 하면 주무부처 장관이 직접 현장을 찾는다. 이전 정부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아직까지 안전문제가 터졌을 때 사실상 이를 조정하고 종합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책임자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에서 자문위원회 등의 방식으로 활용하고는 있지만 법적 기구는 아니다. 안전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정식 직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전관리의 이상적인 모델을 위한 선행조건이 있다면.
모든 것은 안전이라는 목표로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간다. 쉽게 말하면 소비자들도 그만큼 안전을 위한 제품을 얻기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령 양계장이 있는 산란농가에 면적이 한정돼 있는데 1만마리 키우던 것을 3000마리밖에 못키운다고 하면 가격이 올라간다. 먼저 안전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바뀌어야 하고, 정부는 이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만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비용이 올라가는 점을 고려해 복지차원으로 쿠폰 등을 지급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이진성 기자 jinl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