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최기철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뇌물공여 사건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자료 열람·등사를 요구했지만 법원행정처가 이를 거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조 전 청장에게 뇌물을 준 업자가 상고법원제 도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청와대 인사라는 의혹과 맞물려 또 다른 ‘재판거래’가 아니냐는 의혹이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검찰과 대법원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3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가 신청한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위해 조현오 전 경찰청장 뇌물 사건 재판기록에 대한 열람등사 거부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재판 개입 의혹이 있다면 당연히 확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은 확인했지만 재판기록 역시 확인해야 한다. 대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재판기록의 열람조차 거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조 전 청장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부산 건설업자 정모씨의 사건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수사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 2016년 6월 작성한 해당 문건에는 문모 당시 부산고법 판사의 이름이 포함됐다.
이 문건에는 '문 판사가 정씨가 기소된 항소심 재판부의 심증을 유출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내용과 함께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검찰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2심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며 '변론을 직권 재개해 1회~2회 공판을 더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방안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해당 항소심은 변론이 모두 종결되고 선고만 남은 상태였던 2016년 11월 재판부 직권으로 변론이 재개됐고, 공판을 2회 더 진행한 후 2017년 2월 선고됐다. 정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8개월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15년 정씨에게 향응 접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난 문 전 판사에게 구두 경고를 내렸던 법원행정처는 정씨의 재판 내용을 유출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징계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은 정씨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의 측근이었던 점에 주목해, 이 사건을 상고법원제 도입과 관련한 청와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7일 문 전 판사의 비위와 그 처리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문 전 판사 등 사무실과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문 전 판사 등과 관련해서는 "별건 수사로 볼 수 있다"는 이유를, 윤리감사관실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로부터의 임의제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는 이유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같은 날 법관 사찰 등 불이익 관련 자료 등과 관련해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도 신청했지만, 법원은 "형사소송법상 국가의 중대한 이익과 관련된 공무상 비밀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최기철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