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규제 타파를 위해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계와 달리 중국의 경우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규제완화를 비롯한 적극적 정부 지원책에 원격의료와 온라인 의약품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수출시장 개척을 위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중국과 상반된 각종 정부 규제가 발목을 잡는 요소로 작용 중이다. 최근 들어 관련 규제 완화 목소리가 높아지며 업계와 정부 간 합을 맞춰가는 분위기지만 일찌감치 규제완화를 통해 산업 육성에 나선 중국에 맹추격을 허용한 상태다.
중국 제약산업은 1990년대까지 '복제약 공장'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상대적 기술 열세에 따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넓은 내수시장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특별한 개발 기술이 필요 없는 복제약에 집중한 탓이다. 지난 1999년 LG화학의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 개발 성공 등의 성과를 거둔 국내 제약업계가 그동안 중국에 비해 한 발 앞섰다는 평가를 받아온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 2015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첨단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며 제약·바이오산업을 핵심 사업군에 포함시켰다. 기존 복제약 중심의 기조에서 벗어나 합성 신약과 바이오 신약 등을 독자 개발해 2020년 1700조원의 산업 규모를 달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국내 못지않은 깐깐한 규제에 막혀있던 중국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이를 기점으로 신약 인증절차 간소화 및 각종 세제 혜택 등을 업고 빠른 속도로 기술을 끌어올렸다. 불법적으로 무분별하게 제조되던 가짜 의약품과 불법 복제약에 대한 강한 정부 규제 역시 중국 제약산업의 질적 성장을 도왔다.
지난 2016년 제약·바이오 산업 중에서도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줄기세포 치료제 관련 글로벌 신규 임상 총 47건 가운데 중국은 8건을 차지하며 미국(23건)에 이어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제약산업의 경쟁력 향상 배경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같은 해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선정한 국가별 바이오산업 경쟁력 순위에서 2009년까지 10위권을 유지하던 한국이 24위로 밀려난 것과 상반된 분위기다. 탄력을 받은 중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원료약 중심에서 완제품 수출 중심과 바이오시밀러 육성에 대한 의지 역시 드러낸 상태다.
중국의 과감한 규제 완화는 시장 구조 변화와 새로운 시너지 창출을 불러일으켰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원격의료'다. 원격의료는 의료인이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은 환자의 질병을 관리하고 진단 및 처방 등을 내리는 의료서비스를 일컫는다. 격오지 거주민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진료 기회를 확대시킬 수 있는 차세대 의료서비스로 꼽히지만 국내의 경우 '의료 서비스 질의 저하'를 이유로 원격의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원격의료 서비스를 본격 도입해 재진 환자부터 대부분의 환자들이 원격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이를 통해 미국으로 유출되던 원격의료 서비스 비용과 의약품 처방까지 동시에 방어하는 효과를 얻었다. 지난해까지 중국에서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은 환자는 2억명을 훌쩍 넘어선 상태다.
원격진료를 통해 의약품까지 처방받는 만큼 온라인 의약품 판매량도 동반 성장했다. 중국의 온라인 의약품 판매액은 지난 2016년 1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16조5000억원 수준으로 껑충 뛴 상태다. 이 과정에서 바이두와 텐센트 등의 IT기업을 비롯해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 등도 앞 다퉈 시장에 진출했다. 온라인 의약품 판매 역시 국내에선 규제에 가로막혀 있는 분야다.
중국 제약·바이오산업의 달라진 위상은 지난 6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바이오전시회 '바이오 USA 2018'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중국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부스가 위치한 전시장 중앙 출입구 앞에 전시관을 설치했다. 규모 역시 참가국 중 최대 규모로 꾸려졌을 뿐만 아니라 주최 측인 미국바이오협회는 개막일 중국 바이오산업의 규제 동향과 전망 등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조지프 데이먼드 미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최근 몇 년 새 중국의 성장세는 무서운 수준"이라며 "한국이 바이오산업을 IT를 이을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기 위해선 중국 정부의 규제 완화 및 혁신 지원책 등의 과감한 노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경우 보수적 회계처리 관점을 비롯해 해외에선 업계 자율에 맡기는 게 일반적인 약가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간 협상으로 결정해야 할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국민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산업인 만큼 관리·감독의 중요성은 공감하지만 관련 규제들이 해외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완화를 비롯한 정부의 각종 육성책을 등에 업은 중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수준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에 국내도 정부의 적극적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신화뉴시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