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너무 늦게 모신 것이 죄스럽습니다.” 일제가 강제징용한 한국인의 유해가 73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 8·15광복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제73주년 8·15광복절 민족 공동행사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를 개최했다. 일본 도쿄에 있는 국평사에 모셔져 있던 징용자 유해 35위를 위한 행사였다. 주지 스님이자 재일동포인 윤벽암 스님은 일본 각지에 흩어진 유해를 발굴, 이제까지 66위가 서울시립묘지에 안치된 바 있다. 이번 35위 역시 서울시립묘지인 용미리 제2묘지공원 묘지에 안치됐다.
1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8.15광복절 민족 공동행사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가 개최돼 희생자 유해 35위가 안치됐다. 사진/신태현 기자
봉환, 4·27 판문점 정상선언 이행
행사는 당초 오전 11시30분에 열리기로 했다가 40분 뒤로 미뤄졌다.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이 늦게 끝났기 때문이다. 경축식에 이어 추모제에 참석하기로 돼있던 인사들이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다. 뙤약볕과 34도에 이르는 무더위 속에서도 먼저 와있던 참석자들은 자리를 지켰다.
광화문 남측광장에 도착한 국민유해봉환단과 일본유해봉환단은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35위를 모시고 북측으로 올라와 무대에 올려놓았다. 유해가 무대로 도착할 때마다 사회자는 고국으로 돌아온 피해자들의 성명을 일일이 불렀다. 참석한 종교계·정계 등 주요 인사들은 한결같이 “고국으로 모셔오는데 너무 늦었다”며 추가 발굴을 위해 정부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부끄러운 정부·대법원 탓에 실태 파악도 못해”
대회장을 맡은 이정희 천도교 교령은 “봉환은 4·27 판문점 정상선언의 실천 이행이기에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며 “너무 늦게 모신 것이 죄스럽고 진행 절차가 너무 느린 점도 죄스럽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을 외조부로 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전 원내대표는 “강제징용 피해자 재판까지 거래 대상으로 삼았던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정부와 대법원이었기에 유해 실태조차 파악이 안됐다”고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꼬집은 다음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중단됐던 피해자 실태 및 진상조사와 봉안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반드시 비무장지대 평화공원 만들어 징용 희생자 모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진상규명, 일본의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 보상을 이룬다는 약속도 했다.
아직 정부 못 믿는 민간단체들
정부 차원의 유해 발굴은 지난 2010년 이후로 중단됐다. 때문에 민간단체들은 정부가 단기간에 다시 발굴에 나설 것이라고 쉽사리 기대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유해봉안위의 윤승길 사무총장은 “민간 단체만 행동하기에는 통관 절차 등 행정 문제가 계속 걸리고, 발굴 속도도 느리며 인력도 모자란다”며 “무엇보다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가 나선다는 점 자체가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윤총장은 “일본 정부가 일제 징용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는 한, 한국 정부도 나서기는 힘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양국 정부가 지원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타국 내 추산 유해 총 100만구
민간단체들이 발굴한 유해는 현재까지 800구 가량이다. 서류로 확인된 유해만 48만구다. 추산치까지 합치면 100만구에 이르는 만큼 정부 지원 없이는 속도가 너무 더디다는 지적이다.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역시 “일본 정부는 침략국인데도 자국 유해를 발굴했지만 한국 정부는 독립운동가 유해조차 다 고국으로 모셔오지 못해 한스럽다”며 “순차적으로라도 송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심경을 밝혔다.
한편 유해봉안위는 DMZ나 민통선에 유해안치 부지를 마련하는대로 서울시립묘지로부터 유해를 옮길 계획이다. 100만구를 모시려면 660만㎡에 이르는 면적이 필요해, 토지 마련에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립묘지의 안치 기한은 15년씩 최장 30년까지이지만, 서울시는 일제 징용 유해의 특수성을 인정해 기한을 한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전 원내대표(오른쪽 2번째)와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오른쪽)이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에 참석해 묵념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