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IFA 2018은 구글의 인공지능(AI) 음성비서 '구글 어시스턴트'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모바일 운영체제(OS)를 장악했던 것처럼 구글 어시스턴트로 '보이스 퍼스트' 시대의 주도권을 쥐고자 한다. 음성비서 '빅스비'로 맞서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디바이스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인 만큼 제3자와의 협력에도 개방적 입장이지만, 구글에게도 문을 열어줄 지는 미지수다. 자칫하다간 구글에 또 다시 종속될 수 있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IFA 2018 전시장 곳곳에서는 구글 어시스턴트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스탭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구글이 자신들의 음성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제조사들에 파견한 직원들이다. 소니, LG전자, 하이얼, 레노버, 파나소닉 등 각 국을 대표하는 50여개 기업들이 꾸린 전시 부스마다 어김없이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TV, 스마트폰, 스피커, 공기청정기 등을 향해 '오케이 구글'을 외치며 구글 어시스턴트를 불러내기 바빴다. 관람객들은 구글 어시스턴트로 해당 디바이스를 제어하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구글은 IFA 2018에서 '구글 어시스턴트'를 적용한 협력사 전시 부스에 자사 스탭들을 파견했다. 사진은 하이얼 부스에서 안드로이드TV 기능을 시연 중인 구글 직원의 모습. 사진/김진양기자
구글은 IFA에 처음으로 참가, 대규모 전시공간을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전시장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과 같았다. 스마트홈을 추구하는 기업들에게 구글은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아마존도 AI 음성비서 '알렉사'를 앞세워 구글와의 일전을 치렀다. 플랫폼을 통해 하드웨어를 지배하겠다는 방침은 구글과 애플이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한 것과 같은 논리였다. 화웨이는 아마존 알렉사를 탑재한 첫 번째 AI 스피커 '큐브'를 공개하며 아마존 대열에 합류했다.
구글 어시스턴트를 적용한 파나소닉 부스에서 배지를 받으려 모여든 참관객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구글 직원이다. 사진/김진양기자
반면 구글과 아마존에 맞서야 하는 삼성전자의 싸움은 외롭다. 스마트폰, TV, 냉장고, 에어컨 등 자사 가전의 대다수 라인업에 빅스비를 탑재했지만 외연 확장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인수를 마친 오디오·전장 기업 하만조차 구글 어시스턴트를 적용한 헤드폰과 스피커를 출시하며 동떨어진 행보를 보였다. 하만 관계자는 "해당 제품의 개발 당시에는 삼성전자에 인수된 상태가 아니었다"고 구글 어시스턴트 적용 배경을 설명했으나, 하만과의 시너지를 노리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앞선 관계자는 "(삼성과)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산업의 주도권이 AI에서 가려질 것이라 판단, 그 기반이 되는 빅스비 확장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가전사업을 총괄하는 김현석 사장은 지난 30일(현지시간) 한국 취재진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갖고 "AI 음성인식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강점은 매년 전 세계적으로 5억개의 디바이스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주요 제조사 중에서는 이만한 곳이 없다"고 앞날을 자신했다. 음성인식 서비스의 성패는 결국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디바이스의 확산에 달렸으며, 경쟁사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제조가 간편한 스마트 스피커에 집중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김 사장은 "어느 회사도 완벽한 보이스 인텔리전트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각자 자기들의 강점이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필요할 경우 외부와의 협력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향도 내비쳤다. 다만 구글과의 협력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삼성이)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해야 하냐"고 반문한 뒤 "우리가 얼마나 많은 힘을 갖느냐에 따라 어떤 조건으로 협력을 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과 손을 잡더라도 삼성이 협상의 주도권을 갖게 되면 빅스비를 통해 구글의 데이터를 이용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