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비롯해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삼성을 겨냥한 잇단 규제에 가능한 시나리오들이 번번히 좌초되고 있다. 길 잃은 지배구조 개선에 삼성 안팎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마땅한 묘수가 없는 가운데 삼성은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겠다"고만 반복할 뿐이다.
27일 삼성의 향후 지배구조 개선 방향을 묻는 질문 에 다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난색을 표했다. 지금껏 거론됐던 방안 중 어느 것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현재로서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며 섣부른 예측도 꺼렸다. 그는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한 뒤 투자회사와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그림은 아직 유효하나, 물산의 규모가 빨리 커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과거에 비해 순환출자가 완화된 만큼 남은 고리만 정리하고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또 다른 전문가는 "예전보다는 순환출자를 많이 해소했다"며 "앞으로 공정위가 얼마나 더 세게 압박할 지가 관건이지만 삼성이 강제로 움직일 수준은 아닌 듯 하다"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 4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전량을 매각하면서 현재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 등 4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남아있는 상태다. 남은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매각해야 하는 삼성물산 지분은 4.72%로, 1조원 상당이다. 앞서 삼성SDI의 지분 처분 때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소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삼성은 전방위 압박에 직면해 있다. 지난 26일 입법예고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은 신규 설립되는 지주회사의 상장 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종전 20%에서 30%로 10%포인트 상향했다. 시가총액 300조원에 이르는 삼성전자 지분 30%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 계산으로도 90조원의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 기존 구조에서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이용해 삼성전자 지분율을 높이는 방안이 그나마 가능성이 높았으나, 의무 지분율이 커지면서 이마저 어려워졌다.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사실상 봉쇄된 셈이다.
대기업 금융보험사와 공익법인 의결권을 5%로 제한하는 방안은 무산돼 최악은 면했지만,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와 무관한 계열사간 합병에 대해서는 금융보험사의 예외적 의결권 행사를 못하도록 했다. 삼성의 융통성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금융권에서의 규제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우선 지난달 시범운영에 들어간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가 있다. 자본 합계에서 차감 항목을 적용한 '적격자본'이 최소요구자본과 가산항목으로 구성되는 '필요자본'보다 많아야 한다는 자본적정성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데, 현재 삼성의 자본적정성 지표는 100%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필요로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도 문제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로 제한하고 있는데,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한다. 개정안은 시장 가치를 기준으로 한다. 이 경우 삼성생명은 19조원 상당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