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한반도는 '폭염 지옥'이었다.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31.5일로 역대 가장 길었고, 전국 평균 열대야일수도 17.7일로 그동안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된 1994년과 같았다. 홍천은 41도라는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 폭염으로 전국에서 4526명의 온열질환자와 4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온열 피해를 정식으로 집계한 2011년 이후 가장 심각했다. 그러나 폭염 사망자는 질병관리본부의 집계보다 3배 이상 많다고 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올해 여름 우리는 '폭염과의 사투'를 벌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인들에게 보내는 필자의 안부는 '사막 낙타처럼 올여름 무사히 건너시기 바란다'였다.
이 폭염은 전 지구적 현상(북반부 중 우리나라는 특히 심했다)이었고, 그 원인은 기후변화다. 화석연료를 삼키고 온실가스를 배출한 인류의 활동은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기온을 1도 올렸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올해 여름보다 더욱 가혹한 폭염과 폭우가, 살을 깎은 겨울 한파가, 그리하여 영화로만 감상했던 재앙 수준의 재난이 예비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 두려울 뿐이다. 지난 2015년 세계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 폭을 2도 이하로 제한하고 1.5도까지 제한하는 데 노력한다는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체결했지만,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올라간 세상에서는 어떤 수준의 재앙이 덮칠지 상상조차 두렵다.
기후변화의 주원인은 화석연료(fossil fuel) 사용이다. 그중에서도 석탄(coal)이 주범이다. 글로벌 전력의 거의 40%가 석탄발전에 의해 생산된다. 문제는 미세먼지의 주범인 황산화물(SOx), 질소산화물(NOx)뿐만 아니라 SOx, NOx의 150배~370배에 달하는 엄청난 이산화탄소(CO2)를 배출한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를 저지하고자 한다면 당장 석탄발전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파리 기후협약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석탄발전의 빠른 단계적 해소(phase-out)가 필요하다. 1.5도로 제한하려면 OECD 국가와 EU 28개국은 2030년 안에, 나머지 국가는 2050년 안에 해소해야 한다는 분석 보고서((CLIMATE ANALYTICS, Implications of the Paris Agreement for coal use power sector, 2016년 11월)도 나왔다. 지난해 11월에는 영국과 캐나다 주도로 결성된 국가와 주정부 연합체인 탈석탄동맹(Powering Past Coal Alliance)이 출범하기도 했다. 25개 국가와 주정부가 가입되어 있으며, 올해 제24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 24)까지 50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가입국은 탈석탄동맹에서 석탄발전 퇴출시한과 재생에너지 전력목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영국은 2025년까지 퇴출목표를 세웠고,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을 31%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중국, 독일 등은 가입하지 않았다. 석탄발전 비중이 높지 않은 국가들이 중심이다. 발전량의 45% 이상을 석탄화력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 동맹에 이름이 없다. 문제는 1.5도로의 제한을 위해 OECD와 EU 국가가 석탄발전을 모두 해소해야 한다는 시점인 2030년에도 우리나라의 석탄발전은 여전히 36%에 달한다는 점이다.
석탄발전 퇴출 흐름과 관련해 가장 주목할 점은 투자자들의 움직임이다. 연기금, 은행, 보험사 등 전통적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종교, 대학, 자선재단 등 돈을 가진 투자자들이 '탈석탄', '탈화석연료' 투자에 빠른 속도로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기관인 350.org의 프로젝트인 '파슬 프리 캠페인'(Fossil Free campaign)에는 현재 985개 기관이 화석연료 투자배제에 동참했으며, 이들의 자산운용 규모는 6조2400억달러에 이른다. 종교 기관처럼 믿음 기반 조직(faith-based organization)이 29%를 차지하는 특징이 있으나, 노르웨이 국부펀드나 캘퍼스 등 연금펀드도 150개(15%)에 달하며, 알리안츠 그룹 등 일반 금융기관도 3%를 차지한다. '파슬 프리 캠페인'에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석탄발전 투자 배제를 선언한 은행, 보험, 자산운용사 등 일반 금융기관은 더 많다. 최근 일본에서는 다이이치생명보험, 닛폰생명보험이 탈석탄을 선언했다.
주류 금융기관들의 석탄발전 불투자(不投資) 혹은 투자철회와 재생에너지 투자 선언은 석탄발전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주범으로 인류 공동체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점, 비윤리적이며 책임 있고 지속가능한 투자가 아니라는 점, 전 세계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강한 투자철회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 재생에너지 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무엇보다도 석탄발전이 사양산업이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기술발전과 전 세계적인 규제 등으로 석탄발전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결국 좌초자산(stranded asset)으로 전락할 위험이 매우 크다. 이 탈석탄은 일반적인 예측보다 더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석탄화력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석탄중독에 빠져 있는 결과다. 국내는 물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석탄발전소를 건설하고, 이를 공적금융기관들이 지원하고 있다. 기후솔루션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이후 신설된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석탄열병합발전소 포함)에 9조4270억원,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9조4163억원을 지원했다. 총 18조8433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국내에서는 국민연금, 한국산업은행, 농협금융지주, 중소기업은행 등이 자금지원을 담당했고, 해외에서는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산업은행이 돈 창구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민간 금융기관들도 대주단으로 다수 참여했다.
기후변화는 둘째치고 한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 80만명이 석탄발전으로 인한 오염으로 사망한다. 그린피스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초미세먼지로 매년 최대 1600명이 조기 사망한다. 우리 시민이 낸 돈으로 우리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죽이는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도 모자라 다른 나라 시민들도 죽이는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7일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행 세부지침 마련을 위한 협상이 열린 태국 방콕 유엔사무소 앞에는 아시아 시민단체들이 "한국이 금융을 제공한 석탄발전소 때문에 아시아가 숨 못 쉰다"는 구호가 쓰인 팻말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각각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에 가장 많이 지원하는 기관 세계 5위와 8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 석탄발전 투자를 철회하거나 향후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아직 한 군데도 없다. 당연히 '파슬 프리 캠페인'에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 금융기관도 찾아볼 수 없다. 세계는 '탈석탄', '탈화석연료'를 내걸고 투자철회와 불투자로, 그리고 재생에너지 투자로 도도히 흘러가는데, 당장의 수익에 눈이 멀어 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1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9차 국제 온실가스컨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는 10월1일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이 있는 인천 송도에서는 제48차 IPCC 총회가 열린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기후변화에 관한 전 지구적 위험을 과학에 근거에 평가하고 국제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기구다. 195개 회원국 정부 대표 등이 참석하는 이번 총회에서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최종 승인될 예정이다. 이를 기해 충남 부여에서는 시민사회와 충청남도가 중심이 되어 탈석탄 친환경 에너지전환 국제 컨퍼런스도 개최한다. 석탄금융의 문제점이 이 컨퍼런스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이 IPCC 총회 기간에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국내 언론은 물론 전세계 외신 앞에서 탈석탄을 선언하도록 유도하는 관여활동(engagement)을 전개하고 있다. 향후 국내와 해외 석탄발전 신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금융기관을 조직하고 있다는 말이다. 석탄발전에 기존에 투자하고 있다면 이를 중단하거나 완전히 철회하는 금융기관이면 더욱 좋다. 또 이미 약정된 신규 투자계약을 철회하는 기관도 가능하다. 석탄발전 불투자 선언과 아울러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를 늘리거나, 기존 프로젝트의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도미니 400 사회지수'로 유명한 에이미 도미니(Ami Domini)는 세상이 이토록 궁색해진 건 투자자들이 책임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통렬히 지적한 바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책임 있는 방식으로 돈을 많이 버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금융종사자들은 투자결정에 ESG 즉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적극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에 대해 고민하고 통합적인 실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계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로 가는 길, 그 모퉁이를 이미 돌아섰기 때문이다.
석탄발전 투자는 인류 공동체, 더 나아가 지구 생태계를 파멸로 이끄는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의 유혹과도 같다. 금융활동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사회책임금융, 지속가능금융은 그 유혹을 뿌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유수의 연기금, 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들은 이 '책임 있는 길'로 속속 합류하면서 '탈석탄', '탈화석연료'를 외치고 있다. 우리나라 공적금융기관과 민간금융기관이 세계적인 지탄에도 투자해 왔던 석탄자금을 고스란히 재생에너지에 투자한다면 우리는 예상보다 더 빨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실패한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인류의 미래는 디스토피아(dystopia)를 넘어 미래 그 자체가 없다고 봐야 한다.
IPCC 총회에서 '탈석탄'을 선언하는 한국 금융기관이 얼마나 나올지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일부 공적연기금과 민간금융기관이 진지하게, 긍정적 방향으로 검토 중이다. 만약 그 기관들이 결단을 내린다면 한국의 금융 역사를 새로 쓰는 주인공이 될 거라는 점만큼은 확실히 보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과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 또한 머지않은 장래에 수익으로 증명되리라고 믿는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부합하는 탈석탄 로드맵을 만들어 대내외에 공표해야 한다. 최소한 공적금융기관의 석탄화력투자를 금지하는 법과 정책을 만들거나 석탄발전의 정산조정계수 제도를 조속히 손질해야 한다. 캐나다와 스웨덴 등은 석탄 관련 회사에 공공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민간금융에 탈석탄을 확산해 나가는 도덕적 명분이기도 하다.
필자는 탈석탄 동맹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올라가고, '파슬 프리 캠페인' 사이트에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이름이 수두룩하게 걸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만의 탈석탄·탈화석 금융연합이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의 역동성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하기를 원한다. 그 길로 가는 초입에서 우리나라 금융기관 중 누가 '탈석탄'의 깃발을 들 것인가. 금융기관 CEO 중 누가 "Me First!(내가 먼저!)"라고 외칠 것인가. IPCC 총회 기간에 그런 선도적인 금융기관과 CEO가 나타난다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