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현실과 영화 속 사형의 괴리감

입력 : 2018-10-24 오전 6:00:00
지난 22강서구 PC방 살인사건피의자 김성수의 신상이 공개됐다. 21 PC방 알바생 신모씨를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점에서 전 국민적인 분노가 뜨겁다. 가족들이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하고, 평소 조용하고 말이 없었단 주변인들의 증언이 뒤따르고 있지만 그를 향한 분노는 식지 않는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해선 안 된다며 엄벌에 처해달라는 국민청원이 23일 오전 기준 90만 건을 넘어 섰다.
 
엄벌에 처해달라는 요구 한 켠에는 사형제 부활 바람도 읽힌다. ‘무늬만 사형제인 현재 관행을 깨고 중한 죄를 지은 이에게 그에 합당한 책임의 무게를 물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대변한 인류 최초 성문법함무라비 법전에도 나온 이 개념은 현대에 들어와사법 살인이란 개념으로 확대되면서 논쟁의 중심이 돼 버렸다 살해당한 피해자의 인권은 지켜지지 않았으나 사실상의 사형제 폐지로 인해 가해자 인권은 지켜지는 현실에 직면하자 이제 영화마다 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나 스스로 처형에 나선 주인공들의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현실의 불만이 판타지로 대체되고 있는 셈이다.
 
사법권을 믿을 수 없으니 내 가족이 당한 억울함은 아빠인 내가 갚는다는 내용의 영화는 너무 흔해서 일일이 제목을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다. 할리우드 영화테이큰’. 납치된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아빠는 범인 살인에 주저함이 없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한 발 더 나아가 사법권의 무능력을 대놓고 비난한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경찰의 무성의한 대처에 분노해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들을 찾아내 잔인하게 복수한다. 한국영화도 다르지 않다. ‘더 파이브에선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결국 살인범을 찾아내 죽음을 선사한다. ‘추격자에서도 경찰의 늑장 대처에 전직 경찰이자 성매매업소 포주인 주인공이 나서 연쇄살인범을 잡는다.
 
반면 사형 제도를 다룬 영화들도 있다. 영화집행자는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에 대한 얘기다. 이 영화는죄를 짓고 회개를 하던 그렇지 않던 사형은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란 명제에 힘을 싣는다. 영화하모니도 그렇다. 극중 문옥(나문희)은 교도소 내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죽인 죄인이기에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쪽에서는 사법권을 믿을 수 없다며 스스로 처형에 나서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형제도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한다. 이제 현실이다. 살인 등 중죄인에게 사형이란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한 법의 심판인가 아니면 사법의 탈을 쓴 살인인가. 피의자 김성수에게 엄한 벌을 내리란 90만 명의 청원 속엔 얼마나 많은 사형제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숨어 있을까.
 
사형제는 정당한 제도인가. 사법 살인인가. 수면 위에서 논쟁이 시작될 때가 됐다고 본다. 제도의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제도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현실을 투영하는 영화 속에선 사법 살인과 불법 살인이 번갈아 가며 판을 친다. 그럼 현실의 우리는. 영화가 현실을 넘어서고 있다. 이건 분명 잘못된 현실이다.
 
김재범 디지털뉴스부장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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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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