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한때 전자왕국으로 불리며 전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본 기업들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가 발판이 됐다. 아베노믹스로 장기간 지속된 엔고를 끊어낸 일본 기업들은 비용절감, 투자확대, 사업조정 등을 추진하며 본격적인 재도약을 준비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기업들의 이익은 확대됐고, 부족했던 일자리는 해외 인력을 끌어와야 할 정도로 넘쳐났다. 정부와 기업의 합작이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에서 구해냈다.
2012년 6월4일 일본 전자산업을 대표하는 소니의 주가는 996엔. 소니의 주가가 1000엔 아래로 내려온 것은 1980년 8월7일 이후 32년 만이었다. 시가총액은 전성기였던 2000년 10조원 대비 10분의 1 수준인 1조엔으로 위축됐다. 이때만 해도 4년 연속 적자에 시달리던 소니의 앞날을 낙관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등 주력 시장의 경기가 바닥을 쳤고, 엔고로 수출 경쟁력도 약화됐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히라이 가즈오 사장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하며 흑자전환 계획을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같은 해 말 아베 총리가 취임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아베 총리는 ▲금융정책(양적·질적 금융완화) ▲재정정책(대규모 공공투자) ▲성장전략(일본재흥전략) 등 이른바 '세가지 화살'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20여년간 이어진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한 공격적 정책은 엔저를 유도해 수출 기업들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했다. 여기에 소니의 자구 노력이 더해진 결과 지난 3분기(7~9월) 소니의 매출은 2조1828억엔, 영업이익은 2395억엔으로 대폭 개선됐다. 2018회계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8700억엔으로 제시됐다. 역대 최고치에 달했던 지난해(7349억엔)의 기록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9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소니 주가는 6248엔으로 장을 마쳤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일본 기업은 소니만이 아니다. 아베노믹스 바람을 타고 다수의 기업들이 수익 개선을 실현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일본 기업의 매출액경상이익률은 7.7%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 기간 경상이익은 26조4000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9% 증가했다. 2009년 1분기 4조3000억엔으로 저점을 찍은 후 10여년 사이 6배 이상 확대됐다. 기업의 이익잉여금은 2011년 281조7000억엔(명목GDP대비 57%)에서 지난해 446조5000억엔(명목GDP 대비 81.4%)까지 늘었다. 기업의 수익 확대는 설비투자 증가→고용확대→개인소비 확대라는 선순환을 불러왔다.
일본 기업들의 부활 배경에는 아베노믹스와 함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있다. 지난 수년간 일본 기업들은 생존의 문제에 집중, 생산거점 조정과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고비용 구조를 개선했다. 엔저로 수익 개선이 시작되면서 확보된 재원으로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도 늘렸다. 해외시장 개척과 차별화 역량 강화, 인수합병(M&A)을 통한 경영 혁신 등에도 주력했다. 반면 혁신에 소홀했던 좀비기업들은 경영 여건 개선에도 결국 도산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