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재계 대표 경제단체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회원사였던 4대 그룹이 모두 떠났고, 인력과 예산 등도 크게 줄었다. 절치부심, 지난 1년여간 조직 정비를 마친 전경련은 신뢰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씽크탱크로서 국민경제 성장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외교 채널도 적극 가동하는 등 재계의 대변자로 다시 나서려 한다.
재벌 대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한다는 대중의 인식도 개선한다. 그 중심에 중소기업협력센터(중기협력센터)가 있다. 지난 2005년 출범한 중기협력센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추구한다. 대기업의 자본으로 세워진 토대 위에서 대·중소 간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연구한다. 올해로 4년째 중기협력센터를 이끌고 있는 배명한 센터장이 책임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잘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시장 원리를 따르면서 꼭 필요한 부분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것.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그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중견·중소기업에 무료 경영자문 서비스 제공
배 센터장과 중기협력센터와의 인연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2007년경 전경련 산업기반팀에서 근무했던 그는 중소기업중앙회와 상생협력 사업을 공동 진행했다. 당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에 가졌던 가장 큰 불만은 납품 단가와 기술 탈취 등에 대한 문제였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글로벌 경쟁력 향상과 연도별 원가 절감 등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상호간 소통이 전혀 없어 갈등만 쌓이던 상황이었다. 배 센터장은 "합리적 상생협력 방안을 찾거나 대화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런 활동이 없어 아쉬웠다"면서 "전경련에서 관련 사업을 하는 유일한 곳인 중기협력센터를 자원했다"고 말했다. 2011년 중기협력센터로 자리를 옮겨 자문단지원팀을 맡았던 그는 지난 2015년부터는 센터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배명한 전경련 중기협력센터장. 사진/전경련
배 센터장이 자랑하는 중기협력센터의 대표 사업 중 하나는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무료 경영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영자문단'이다. 대기업을 퇴직한 180여명의 자원봉사 인력들이 중소기업에 경영·제조 노하우 등을 전수하는 활동으로, 지난 2004년부터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센터 차원에서 자문단 위원들에 대한 교육을 매달 진행하고 있지만 위원들이 자발적으로 스터디를 진행할 만큼 열의도 매우 높다. 워크숍을 통한 경험 교류 활동도 자주 갖는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들을 보면 보편적으로 한 가지 이상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문위원 간의 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중기협력센터로의 방문 혹은 전화 상담에 응대하기 위해 당직 제도도 운영한다. 배 센터장은 "경영자문단의 우수 사례는 매년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대기업에서의 경험을 살려 세부적인 조언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문단 활동도 전경련의 외풍에 된서리를 맞았다. 재능 기부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일이지만 '전경련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에 힘이 빠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배 센터장은 "자문위원들은 자부심이 곧 보람이었는데 (국정농단 사태 이후에는)적폐기관에서 왔다는 편견이 강해졌다"며 "자문 수요를 발굴할 때도 전경련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얽히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경련, 빨리 제 기능 회복해야"
전경련 위상 회복에 대한 희망도 내비쳤다. 그는 "전경련이 빨리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며 "과거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없애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든다면 사회경제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배 센터장은 전경련 스스로도 반성을 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전과 같은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에 임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면서도 "누구를 탓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성장 관점에서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강화하고 민간 경제 외교도 더 활성화해야 할 것"이라며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국민의 인식도 바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경련 고유의 역할이었던 민간경제 현실을 정책기관과 정치권에 전달하는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대기업이 경제성장의 한 축이고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정부와 대기업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가 개별 기업과 접촉하는 것은 어려우니 전경련을 창구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배 센터장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협력이익 공유제'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유시장 거래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왜곡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며 "성급히 시행했다가는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기여도는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 이익 공유 대상이 아닌 해외 협력사들의 반발은 어떻게 할 것인지, 대기업의 손실 발생도 함께 책임질 것인지 등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추진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정부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에는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 설립 이후 추진한 정책은 크게 공정거래 부문과 상생협력 부문으로 나뉘는데, 그 중에서도 공정거래에서 대기업과 협력사의 관계는 크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배 센터장은 "동반성장위원회가 생기면서 대기업 내에도 관련 조직과 담당 인력이 생겼다"며 "공정거래를 해야 한다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1차 협력사에 대한 대기업의 대금 지급이 거의 100% 현금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납품 단가 결정이나 반품 거절 등에서도 조심하는 문화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2.3차 협력사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어려워"
다만 2·3차 협력사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어렵다고 그는 지적했다. 중기협력센터의 자체 조사결과 하도급 공정 부문에서 1차 협력사는 58.9%가 개선됐다고 응답한 반면 2차 협력사는 같은 응답 비중이 32.5%에 그쳤다. 그는 "1차 이하 협력사의 상생을 대기업이 간여하는 것은 협력사 경영에 대한 부당간섭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대기업과 1차 협력사 관계를 넘어 2차 이하 협력사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전반적인 상생협력 정책 방향에서도 "시장논리에 따라 협력이 이뤄져야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정책적으로 일괄적 기준을 두고 평가하거나 이행을 강요하는 것은 부정적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기업이 협력사를 지원할 때 기술 개발, 자금 지원, 생산성 개선 등 초점을 맞추는 부분이 기업마다 상이한데, 현재 평가 기준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야 함을 지적한 것이다.
배 센터장은 중소기업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력은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인데 스스로 역량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의 전속 거래를 문제로 들고 있는데, 대기업들이 다른 기업과의 거래를 독려하는데도 그냥 안정을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기업들의 도전정신 부재를 꼬집었다. 동시에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길을 터주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센터장은 "도금, 주물, 소재 등 뿌리 산업에서 실력이 뛰어난 기업들이 매우 많다"며 "해외 거래선과 연결이 되면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채산성 악화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해외 창구를 열어주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라며 "최근 역점을 두고 있는 벤처·창업기업 지원에서도 기존 중소기업들의 노하우를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