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노란조끼(gilets jaunes) 운동은 한 달여간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17일 시작된 이 운동에 노란조끼를 입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갈수록 증가하는 중이다. 유명 연예인과 방송제작자, 정치인, 고교생, 철도기관사, 샐러리맨들도 가세하고 있다. 노란조끼 운동이 프랑스인의 72%의 지지를 받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6·8혁명 이후 평화시위를 줄곧 해왔던 프랑스의 모습은 사라지고 도시 곳곳에는 연기가 자욱하고 기물이 파손된 채 널브러져 있다. 지난 1일에는 격렬한 시위로 인해 파리의 상징인 개선문마저 손상됐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은 “이 데모로 파리시가 입은 피해액은 300만~400만유로(한화 38억~50억원)에 달한다고 국영TV <프랑스 3>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파리와 보르도, 마르세유, 툴루즈, 디종 등의 도시 한복판은 화재가 발생하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런 모습을 외신들이 놓칠 리 없다. 영국의 더 선데이 텔레그래프(The Sunday Telegraph)는 시위대가 손에 삼색기(프랑스 국기)를 들고 노란조끼를 입은 사진을 1면에 싣고 “파리는 불탄다”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이태리의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는 “파리 한복판의 게릴라 안티 마크롱”, 스페인의 엘 파이스(El Pais)는 “노란 조끼의 반란이 파리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라는 타이틀로 1면을 장식했다. 독일의 일간지 디벨트(Die Welt)만이 다소 얌전하게 “파리의 격화되는 폭력”으로 제목을 뽑았다.
이처럼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은 예사롭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 사태에 대한 입장표명을 거부한 채 침묵만 지키고 있다. 다만 에두아르 필리프 수상은 마티뇽(수상관저)에서 노란조끼 운동 대표들을 면담하고 유류세 인상을 철회하기로 했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Christophe Castaner) 내무부 장관은 노란조끼 운동에 직면해 정부가 여러 면, 특히 에너지 전환문제에 있어 커뮤니케이션을 “잘못 운용했다”고 인정했다.
수상과 내무부 장관 모두 이번 사태의 원인을 에너지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란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분노 이유를 이구동성으로 “과세의 공정성”, “공익사업”, “지도부의 귀감” 세 가지로 요약하고 마크롱 정부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프랑스 남부도시 오리악(Aurillac)에서 노란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온 장 루이(Jean-Louis·62세)는 “유류세 인상은 국민들이 보내는 원성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편안히 퇴직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연금 생활자가 내는 세금은 크게 인상됐다”고 통렬히 비난했다. 공무원인 루이는 마크롱정부의 정책방향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과세의 공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이자 한 가정의 어머니인 마리(Marie)는 “나는 아주 정직하고 싶다. 내가 여기 나온 것은 세금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식들과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다. 사람들은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그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토로하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걱정했다. 육아휴직 중인 소피(Sophie·30세)는 정부가 에너지 변화를 정말 이끌어내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했다. 그녀는 “적은 봉급자들에게 증세를 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세금의 극히 일부분만이 환경을 위해 쓰인다. 정부 지도자들은 우리 등 뒤에서 돈을 번다. 우리 아버지는 14살 때부터 일을 시작해 쉰 적이 없다. 그가 받는 퇴직 연금은 800유로(한화 102만원)다. 지도자들은 귀감을 보이지 않고, 그들의 월수입은 5000유로(한화 638만원)인데도 죽는 소리만 한다. 나는 육아휴직 중이어서 매월 300유로(한화 38만원)를 받는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300유로…상상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결국 노란조끼 운동은 프랑스인들의 마크롱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국정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가 발족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소득주도성장은 ‘노래만 부르다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경기는 회복될 기미가 전혀 없고 실업률은 오르고, 물가 또한 만만치 않아 서민들의 생활고는 날로 커져만 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전혀 긴장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다. 청와대의 공직기강 해이가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담합을 했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이런 사태가 자꾸 발생하는 것은 위험신호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도 따지고 보면 유류세 인상이라기보다 정치인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다. 혁명은 사회·경제적 변동뿐만 아니라 사소한 우발적인 사건에서도 초래된다고 하지 않던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청와대와 민주당은 쇄신하라. 그리고 참신한 인재들로 후기 정부를 꾸려 정직하게 끌고 가라. 그렇지 않다면 민생고와 더불어 국민의 분노는 커져만 갈 것이고 결국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노란조끼 운동은 비단 프랑스만의 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