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국민통합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

입력 : 2018-11-27 오전 6:00:00
지금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gilets jaunes) 운동이 한창이다. 정부에 불만을 품은 프랑스인들이 일주일 넘게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와 데모를 벌이는 중이다. 지난 24일에는 28만2000여명이 거리로 나와 “모든 걸 봉쇄하자!”라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전국 곳곳을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정부의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이 운동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구매력 상실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SNS를 통해 무섭게 번져나갔다. 이 운동은 구제도를 무너뜨린 자크리(Jacquerie) 방식의 농민운동과 유사한 면이 있다. 삶의 질이 떨어진 프랑스인들은 마크롱 정부가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마크롱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대기오염도 예방한다며 유류세 인상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지난 1년 사이 경유 가격은 23%, 휘발유 가격은 15% 올랐다. 내년 1월에는 추가 유류세 인상이 있을 예정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 18일 프랑스 일요신문이 공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62%의 프랑스인이 “먼저 구매력을 늘리고 서서히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공영방송 <프랑스 2>는 지난 22일 마크롱 정부를 떠나 3개월 간 칩거 중인 니콜라 윌로(Nicolas Hulot) 전 환경부 장관을 초대해 ‘노란 조끼 운동과 정부의 환경정책, 그리고 내년 유럽선거’를 주제로 질문을 주고받았다. 윌로 전 장관은 노란 조끼 운동은 ‘모면할 수 있는 것’ 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싸웠다. 특히 내가 사임하기 몇 주 전 에너지·환경 정책이 사회와 동행하기 위해서는 탄소세 증가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장·단점을 들어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내가 시도한 모든 것에 대해 책임지길 원한다. 내가 실행하고자 하는 것을 설득하지 못했을 때 과도하게 속도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사회는 ‘환경이 사회에 상반된다’고 생각하는 대립구도를 잘 극복할 것이다. 다만 내가 바란 것은 환경과 사회의 조화였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의 이 위기는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윌로 전 장관은 정치적 야망, 특히 다음 대선에 나갈 의사가 없음을 천명했다. 그는 세간의 ‘윌로 2022(대선)’ 구호를 두고 “기자 출신인 내게 하나의 환상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방송이 끝날 무렵 <프랑스 2>는 시청자 대상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 58%가 내년 5월에 있을 유럽선거에서 윌로 전 장관이 선거를 주도하길 원했다. 이에 윌로 전 장관은 “그런 일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전진하는 공화국’도 ‘환경당’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대체자들(Alternatives)이 부상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또한 “나는 분열시키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며, 환경 이슈에 대해 결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유럽선거 캠페인 때 환경 이슈에 대한 공약경쟁을 하길 원한다. 만약 내가 나의 명성을 간직하고 싶었다면 나는 정부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명성이 만약 목적 그 자체라면 부질없는 것”이라고 강조한 그는 “명성을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데 쓰고 싶다”는 말도 했다. 방송을 본 65%의 시청자들이 윌로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노란 조끼 운동이 날로 거세지는 프랑스의 위기 앞에, 환경의 아이콘이자 프랑스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윌로 전 장관이 한 발언은 울림이 크다. 그가 TV에 나와 “이 위기는 피할 수 있었던 것이며, 환경과 사회가 조화롭게 동행하려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피력하는 장면을 보며 이런 정치인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프랑스가 부럽기만 하다. 마크롱 대통령의 구태정치와 환경에 대한 상이한 비전에 반기를 들고 장관직을 사임했지만 라이벌의 위기를 절대 자신의 정치적 기회로 삼지 않았다.
 
문득 우리 사회의 몇몇 인사들이 떠오른다. 라이벌의 위기를 자신의 정치적 도약의 기회로 삼고, 명성을 얻으면 이를 이용해 정계로 들어가려는 우리 사회의 인사들. 이런 한국의 문제점이 윌로 전 장관의 모습과 상반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최근 자유한국당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당을 혁신한다며 명성 있는 인사를 영입해 비상대책위원장, 조직강화특위 위원을 시켰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당의 혁신은 요원하고 해촉된 위원은 보수를 재건하겠다며 신당을 창당한다는 풍문이 난무하다. 유명인을 찾아 당을 혁신하겠다는 한국당도, 부르니 그냥 달려가는 유명인도 모두 문제가 크다. 자신의 명성을 대통령 또는 유명 정치인이 되기 위해 쓰기보다 윌로 전 장관처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데 쓰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많이 나와야 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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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