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정경부 기자
지난 15일 밤 열린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베트남이 말레이시아를 1대0으로 꺾고 우승한 여운이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의 ‘파파 리더십’이 부각되고 여기저기서 포상금이 답지하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SBS가 생중계한 스즈키컵 결승 2차전 시청률이 18.1%(전국 기준)로 집계됐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4강 신화를 썼지만 이후 아시안게임 대표팀·K리그에서 신통치 않은 성적을 내자 사실상 쫓기듯 베트남으로 떠났던 박 감독의 인생도 재조명되고 있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선전에 한국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를 놓고, 많은 이들이 박 감독의 도전정신과 함께 한국과 베트남 간 ‘특별한 역사’를 꼽는다. 호치민·하노이 등 대도시나 젊은 층들에게서는 다소 잊혀졌다고 해도, 베트남전쟁 당시 주민들이 입은 상처에 한국이 일정부분 관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한국이 동북아 패권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과 연대해 중국과 일본의 다툼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베트남전쟁 당시 전쟁범죄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베트남 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응원에 나서고, 한국말로 또박또박 “한국사람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채롭다. 문득 박 감독이 우승 인터뷰에서 “저를 사랑해주시는 만큼, 내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해달라”고 말한 장면이 겹친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국민들 사이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도 꽤나 높아졌을 것이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적개발원조(ODA) 총액은 일본·중국에 못미친다. 편성한 ODA 자금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ODA가 외교부 기본심사도 받지 않고 추진돼 예산낭비는 물론 외교갈등의 소지까지 될 수 있다” “ODA 사업 후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사후관리가 없어 지원된 장비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등의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돈쓰면서 욕먹는 사이 그 빈틈을 기업이나 개인의 노력으로 메꾸는 모양새다. 이번만 해도 축구대회 우승을 통한 베트남 내 국가브랜드 제고를 ‘민간외교관’ 박 감독이 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의 희생·노력이 국가이미지를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는 남수단 국민들을 울렸고, 방탄소년단(BTS)의 인기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박 감독의 선전도 그 자체로 흘려보내기 아까운 기회다. 문재인정부가 강조하는 신남방정책의 핵심파트너로 베트남이 부각되는 가운데,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은다면 또 다른 가치창출이 가능할 줄로 믿는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