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피독을 아시나요?)①인간이 버린 생명, 인간을 구하다

'안락사 위기' 유기견들, 중증장애·고령자들 심리 치유 도와…서울시도 프로젝트 기금 지원

입력 : 2019-01-02 오후 2: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버려진 개는 7만3002마리로 4분의 1 가량인 1만8442마리는 주인을 찾지 못하거나 수용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안락사됐다. 집계되지 않는 유기견 안락사까지 합치면 연간 2만마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활동과 제도 개선, 시민 캠페인 등에 집중하는 기존 동물보호단체들과 달리 '테라피독(Theraphy Dog) 프로젝트'는 사회혁신 접근방법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테라피독은 '인간이 버린 생명으로 인간을 구한다'는 개념으로, 사람과의 교류로 질병이나 부상·스트레스 등을 치유하도록 돕는 동물매개 도우미견을 말한다.
테라피독은 치매·자폐·재활·우울증·스트레스 등을 치유하는데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등 다른 비약물요법보다 효과가 빠르다. 아이들이나 어릴 적 키운 경험이 있을 경우 보다 효과적이다. 병원이나 호스피스, 소년원, 복지관 등 특정계층은 물론 도서관, 공항, 장례식장 등에서 대중을 대상으로도 가능하다. 1인 가구와 고령화시대인 지금, 테라피독 프로젝트에 주목하는 이유다(편집자주).
 
지난해 10월23일 서울숲에서 테라피독이 중증장애인들과 소풍을 하고 있다. 사진/피스윈즈코리아
 
사람에게 버려져 안락사 위기에 처했던 유기견들이 테라피독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증명하고 있다.
  
테라피독 프로젝트는 유기견을 유기견보호소에서 데려와 동물등록·건강검진·중성화 등 필수조치를 시행한 후 테라피독 훈련을 거쳐 테스트를 통과한 테라피독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유기견 선정, 후보견 치료, 테라피독 훈련, 테라피독 테스트, 프로그램 기획 등 많은 단계로 프로젝트가 이뤄지다보니 동물복지와 사회복지 등 한 업역이 아닌 다양한 업역의 단체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에 국제재난구호단체인 피스윈즈코리아는 에듀펫, 올라펫, 러쉬, 십이견지, 한국에자이 등 10개 기관과 테라피독이라는 공동 목표로 각자 영역에서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콜렉티브 임팩트’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피스윈즈코리아는 전체 사업을 기획하고, 아트온어스는 동물매개치유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에듀펫은 테라피독 선정·훈련을 맡고, 올라펫은 사료 후원과 홍보를 맡는다.
 
특히, 서울시는 ‘일상생활 실험실’인 리빙랩에 테라피독을 선정해 프로젝트의 기금을 지원하고, 다양한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청년·공유·교통·환경 등 지난해 서울시 리빙랩 13개 가운데 동물 관련 아이템은 테라피독 프로젝트가 유일하다. 다른 기관들도 행정 지원이나 후원·홍보 등을 저마다 맡아 그야말로 영화 ‘오션스 일레븐’ 못지않은 테라피독 ‘오션스 텐’를 꾸렸다.
 
지난해 7월 ‘오션스 텐’을 꾸리자마자 곧바로 국내 최대 유기견보호소인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양주보호소에서 유기견 4마리, 에듀펫이 임시보호 중이던 1마리 등 총 5마리를 후보견으로 선정해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 예방접종, 동물등록, 중성화를 마쳤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아 안락사 위기에 쳐해있던 후보견은 3개월간의 테라피독 훈련을 받아 두 차례의 테스트를 거쳐 3마리가 최종 테라피독으로 합격했다.
 
테라피독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관을 모집하자 각계각층에서 관심을 나타냈고 면담을 거쳐 대학교, 요양원, 장애인단체, 병원, 미취학미등록이주아동, 뇌전증 환아 등 모두 6곳과 프로그램을 진행키로 협의했다. 단, 병원과 대학교는 각각 협의과정에서 내부사정이나 준비기간 필요 등을 이유로 프로그램 실시를 보류해 지난해 프로그램은 4곳과 진행했다.
 
긍정적 효과는 즉시 확인되고 있다. 뇌전증 환아인 A군(15)은 지난해 10월 총 3차례 에듀펫 반려동물문화교실을 찾아 훈련사와 동물매개심리상담사와 함께 테라피독에게 간식주기, 산책하기, 빗질하기, ‘굴러’ 지시하기, ‘멈춰’ 지시하기 등을 했다. 처음에 테라피독을 다루는데 어려움을 겪던 A군도 점차 흥미를 보이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으로 작은 목표를 달성하며 성취감과 유대감을 익혔다. 
 
지난해 10월23일, 평소 외출조차 쉽지 않은 중증장애인 5명이 테라피독들과 서울숲으로 소풍을 다녀왔다. 소풍 전만해도 이들 장애인이 모두 남성이라 주위에서는 테라피독에게 자칫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테라피독의 이름을 익히고 상자 안에 간식 넣어주기, 낚시대로 간식 주기, 반련견 퀴즈, 테라피독과 산책하기 등을 하면서 모두 밝은 표정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다음 소풍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모두 3차례에 걸쳐 테라피독이 경기도 양주에 있는 요양원을 찾았다. 외진 곳에 위치해 방문객조차 뜸하던 요양원에 테라피독이 등장하자 10여명의 어르신들은 먼저 다가가 게임에 참여하고, 어릴 적 개를 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서로간의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마지막 테라피독 프로그램은 남양주 외국인복지센터에서 미등록 이주아동 5명과 함께했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주민등록도 없어 사회제도 안에 속하지 못해 학교도 못 가거나 가더라도 비용 부담이 크다. 늘 추방에 대한 두려움과 언어가 능숙하지 못해 사회 바깥에만 있던 아이들은 테라피독을 만나며 점차 겁을 내는 대신 적극적으로 바뀌며 자신감을 얻었다.
 
김동훈 피스윈즈코리아 대표는 “실제 테라피독 프로그램을 해보니 4그룹 모두 반응이 좋고 추가 프로그램 진행을 원해 수요는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며 “올해엔 병원 등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만족도 정도가 아니라 학술적 효과까지 증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재동 반려동물문화교실에서 테라피독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피스윈즈코리아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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