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집안일을 마친 지난 일요일 오후. 청소와 빨래로 지친 몸을 바닥에 뉘었다. '편하게 누워 TV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KT에서 대여한 실감형 미디어 기기 '기가라이브TV'가 떠올랐다. 기가라이브TV는 가상현실(VR)과 게임 콘텐츠를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통해 즐길 수 있는 기기다. 다른 HMD와 달리 스마트폰을 장착할 필요가 없다. HMD를 머리에 쓰고 콘텐츠를 스트리밍으로 즐길 수 있다. 기가라이브TV를 쓰니 마치 천장에 빔을 쏜 듯한 홈 화면에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으로 고개를 저으며 곳곳을 둘러봤다. 인터넷에 연결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기가라이브TV의 리모콘을 한 손에 쥐면 리모컨이 가리킨 방향이 HMD 속 화면에 한줄기 불빛으로 표시된다.
KT기가라이브TV를 착용한 모습(왼쪽)과 KT기가라이브TV·리모컨. 사진/박현준 기자
홈 화면에 뜬 키보드를 하나하나 찍으며 집에서 사용하는 무선 인터넷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옆에서 기자의 모습을 지켜본 아내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HMD를 쓰고 입을 벌린 채 리모컨을 꾹꾹 누르는 남편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모양이다.
드디어 인터넷에 연결됐다. 생생한 영상을 찾아 메뉴를 뒤졌다. 브이린(VRIN) 메뉴를 선택하니 각종 영상들이 썸네일 형태로 나열됐다. '상어가 서식하는 난파선 탐사' 영상을 선택했다. 제목대로 상어가 우글거리는 난파선 인근의 해저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북극의 환경' 영상을 재생하자 헬기에서 바라본 북극의 하늘과 땅의 모습이 나왔다. 평소 다큐멘터리를 즐기지 않았지만 상하좌우로 고개를 돌려가며 영상을 감상했다.
부산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한 힐링 영상도 눈에 띄었다. 광안대교가 발 아래로 보이는 각도에서 펼쳐진 광안리 바닷가의 모습과 고층 빌딩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유명한 스타가 나오지도 않는 잔잔한 풍경이지만 한참을 둘러봤다. 이러한 영상은 어르신을 위한 콘텐츠로 더 개발해볼 만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몸이 불편해 멀리 떨어진 고향까지 가지 못하지만 360도 영상으로나마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촌팬들을 열광시키는 걸그룹의 댄스 영상도 즐길 수 있다. 일반 댄스 영상과 다른 점은 멤버들이 360도 카메라를 중심에 놓고 춤 실력을 뽐낸다는 것이다. 그만큼 가까이서 멤버들을 볼 수 있다. 모든 공연장을 쫓아다니기는 힘든 국내·외 아이돌 팬들에게 유용한 콘텐츠다.
KT기가라이브TV의 홈 화면. 사진/KT
다음은 게임을 선택했다. 인기 게임 스페셜포스를 가상현실로 옮겨놓은 스페셜포스 VR 버전이다. 군인이 돼 전장 곳곳을 누비다보니 자연히 몸이 일으켜졌다. 나도 모르게 몸을 숙였다가, 옆으로 피하는 동작을 하게 됐다. 갑자기 화면이 흔들렸다. 뒤돌아봤더니 반대편에 있던 적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모니터의 2D 화면으로 즐기던 스페셜포스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기가라이브TV는 KT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올레tv모바일'의 모든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영화를 재생하자 마치 영화관에 온 것처럼 어두운 배경에 정면에 스크린이 나왔다. 집에서 인터넷(IP)TV를 통해 영화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애초에 360도 영상은 아니지만 혼자 영화관에 온 것처럼 더 집중할 수 있다. 단, HMD는 VR 영상을 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소리까지 고품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리는 HMD에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 나와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들린다.
기가라이브TV는 중국 HMD 제조사의 '피코 G2'다. 9축 센서를 탑재해 시선을 따라가는 화면의 움직임이 꽤 자연스럽다. 배터리 용량은 3500mAh로, 동영상 시청시 연속으로 3시간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HMD를 쓴 채 3시간까지 연속으로 영상을 감상하기는 목에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기자도 약 20분 정도 영상을 착용했다가 잠시 벗어놓은 후 다시 쓰면서 영상을 즐겼다.
기가라이브TV의 판매가격은 47만원이다. KT는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해 10% 할인에 프라임 무비팩 3개월 무료 이용권과 블루투스 이어폰도 사은품으로 제공한다. 하지만 아직 VR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 소비자들이 선뜻 지갑을 열기 쉽지 않은 가격이다. KT가 IPTV와 초고속인터넷 결합상품처럼 기가라이브TV 구매자에게도 결합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면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VR을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