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한국경제는 지난해 어려움 속에서도 수출 6000럭달러를 달성했고,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의 기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보수언론과 일부 야당들은 당장이라도 나라 경제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경제는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하였다. 2018년 경제성장률 2.6%는 고도성장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눈에는 형편없어 보이지만 잠재성장률이 3%로 떨어진 상황에서 낮은 것이 아니다. 이런 경제 흐름은 2019년에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 서민대중의 삶은 팍팍해졌다. 촛불민심이 탄생시킨 문재인정부의 국정지지도 하락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통해 한국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장 좋아지지 않더라도 희망이 보이면 참겠지만 그 싹도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오래전에 후퇴하였고 임금은 매년 2∼3% 찔끔 오르는데, 집값은 문재인정부에서 약 30% 폭등하였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고루 분배되지 않고 소수의 기득권 세력들의 배만 채워주고 있다는 판단이다.
우선, 현 정부의 경제 철학 기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라는 3대 정책은 그 방향은 옳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정책들이다. 새로운 경제정책의 실행은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가 말한 '전환의 계곡(Valley of Transition)'의 덫에 빠질 위험이 크다.
전환의 계곡이란 더 높은 산에 올라가기 전에 만나는 계곡으로, 사회적 성숙 및 기반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급격한 사회 및 경제적 비용의 증가를 말한다. 비용 증가는 사회 갈등을 가져오고 개혁 후퇴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소득주도성장은 노동 몫이 늘어나게 되면 수요가 확충될 뿐만 아니라, 임금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 경제 전반의 생산성도 개선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권 강화,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강화 등이 세부 정책 수단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저임금노동자들의 소득이 늘어나려면 사용자의 이윤이 축소되어야 하며, 고임금노동자의 임금인상 자제가 필수적이다. 소득성장정책의 꽃인 최저임금제는 저임금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정책이지, 고용정책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처음에는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거짓 주장에 한방 먹고 나중에는 자영업 붕괴의 원인이라는 담론에 무너져 내렸다. 이들 반대 논리의 종착점은 최저임금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과거로 되돌리면 자영업은 번성하고, 일자리는 늘어나고,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해소되는가.
다음으로 성장 동력의 약화이다. 한국경제 어려움의 뿌리는 지난 30여년 우리 국민을 먹여 살렸던 자동차 산업을 비롯해 조선·철강·기계·석유화학·반도체 등 주력 제조업의 성장세 둔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제조업 성장 동력의 약화는 최근에 불거진 현상은 아니지만 지난 10년 동안 손을 놓고 있어 더 악화되었다.
제조업의 성장 동력 확보는 일자리 창출 및 유지를 위해서도 긴요하다. 제조업 경쟁력의 회복을 위해서는 원하청구조 등 산업생태계 혁신, 일터혁신을 통한 고품질 생산체제 구축, 참여 협력적 노사관계의 구현 등이 요구된다. 과거의 '대기업·자본투입' 중심에서 탈피해 '중소기업·인적투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공정 경제를 위한 원청의 갑질을 근절해야 한다. 대기업에 종속된 수직계열화에서 벗어나 수평적 네트워크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2019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한국사회 개혁의 기본 방향을 정서적으로 잘 표현한 발언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국민들도 알고 있다. 현 정부의 정책이 노동보다는 기업으로, 중소기업보다는 재벌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문재인정부 성공의 길은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사회 대개혁의 길로 정진하는 것이다. 국민 대중을 믿고 뚜벅뚜벅 가는 것이다. 경제정책의 기조와 방향을 바꾸기에는 아직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일이 너무도 많다. 아직 임기가 3년이나 남아있지 않은가.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roh401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