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7일 '혁신벤처기업 간담회'를 가진 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혁신성장의 핵심인 '벤처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저성장시대에 고도성장을 달성한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결을 정부 정책에 적극 반영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간담회에는 1세대 벤처인인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등과 함께 '한국형 유니콘 기업' 창업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쇼핑몰업체 쿠팡의 김범석 대표, 화장품업체 L&P코스메틱의 권오석 대표,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 운영업체인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 '토스(TOSS)'를 만든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 등이다. 장병규 크래프톤(전 블루홀) 의장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국내 유니콘 기업 6개중 5개사가 참석한 셈이다. 옐로모바일은 최근 사업부진 등을 이유로 기업가치가 하락해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벤처라는 특정 분야에서 한 자릿수 참석자만 대상으로 간담회를 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보여주기식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실제 정책에 반영하려는 의지라는 해석이다. 설 연휴를 마치고 첫 공식일정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적극적인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 발 더 들어가는 것으로 보면 될듯하다"고 설명했다. 80분간 진행된 간담회는 벤처인들이 주로 발언하고 문 대통령과 정부관계자들이 경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업인들은 실제 기업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을 토로하며 개선안을 제안했고, 정부가 듣기에 불편할 수 있는 내용도 가감없이 발언했다.
권오섭 L&P 대표는 "많은 청년들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저희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에 해오던 구인광고를 하고는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구직자와 기업을 이어주는 취업방송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 "외국과 다르게 우리는 판매자와 제조자를 모두 기재해야 하는데 하나만 기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바이오헬스는 새로운 시장 창출이 가능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산업"이라며 "현재 한국은 우수한 인재, 뛰어난 IT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등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민간은 투명하게 운영하는 등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규제는 네거티브 규제로, 미래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는 우수한 과학인재들이 있다. 반면 의료환경은 열악하다"면서 "북의 의료문제 해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바이오 산업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산업 트레이닝 센터를 만드는 등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는 "정부의 지원책이 있을 때마다 시장경제를 왜곡시키는 것은 아닌가 우려를 하곤 한다. 지원을 하더라도 시장경제의 건강성을 유지시켜 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가 자국기업 보호에 열악한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견해와 국내기업 역차별 문제도 대두됐다. 김 대표이사는 중국을 겨냥한 듯 "다른 나라는 자국의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더 강고한 울타리를 만들어 타국기업의 진입이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해외기업이 들어오는 것은 쉽고 자국 기업이 보호받기는 어렵다"면서 "정부가 조금 더 스마트해지면 좋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해진 네이버 GIO도 "경쟁사들은 모두 글로벌 기업인데 그들은 한국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며 "인터넷 망 사용료나 세금을 내는 문제에 있어서 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국내기업과 해외기업들에게 적용되는 법안들이 동등하게 적용되었으면 한다"고 아쉬워했다.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는 "자본이 시장에 들어왔을 때 스케일업이 중요하다. 국내 벤처캐피털들이 공격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 "정책 목적의 펀드가 많은데 잘 될 곳을 적극 밀어주는 게 필요하다"면서 "창업주들이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도록 살펴봐달라"고 당부했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유니콘 기업이 많이 생기려면 외자유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걸 막는 것이 불확실성"이라며 해외의 한국시장이 너무 작다는 편견과 정부 규제의 폭과 해석이 자주 바뀌는 것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김 대표는 "한국은 국민들의 높은 교육 수준과 더불어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을 받아들이는 속도 또한 빨라서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며 "그러한 불확실성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핀테크는 워낙 규제가 많다 보니 외국 투자자들에게 설명만 하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면서 "또한 그들에겐 한국의 제도와 정책에 대한 구체적 데이터가 없다 보니 더더욱 투자유치 받기가 어렵다"며 규제혁신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엔지니어들의 부족으로 서로 다른 기업의 개발자를 빼오는 상황까지 연출된다"며 인재양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는 "주52시간 근무의 취지는 알겠다. 하지만 급격히 성장하는 기업에게는 그것이 또 하나의 규제로 작용한다"면서 "엄격한 관리감독이 이뤄지고 있는 곳들에게는 유연한 대처를 당부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벤처기업인들의 제안과 요청에 일일히 대답하기보다 묵묵히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간담회에 배석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겐 "해당부처에서도 잘 살펴봐라"고 당부했다. 청와대 비서실은 이날 기업인들의 제안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에 전달해 해당기업에 직접 답변하도록 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