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올해부터 시작한 ‘여성공무원 숙직 시행’은 젠더 이슈와 맞물려 지난해 말부터 찬반 논란이 뜨겁다. 한 쪽에선 “성평등 시대에 여성도 숙직을 서야한다”로 말하고, 반대편에선 “사회와 가정의 성적 불평등 상황에서 숙직 시행은 기계적 평등일 뿐”이라고 맞선다.
서울시는 ‘당직 및 비상근무 규칙’을 개정해 숙직(야간당직) 근무 대상자에 여성공무원을 포함시켰다. 앞서 내부 여론조사를 거쳤다. 본청 기준 전체 당직 대상자는 4000여명으로, 이 중 여성 비율이 40%까지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남녀 당직주기 격차가 1.7배까지 벌어졌다.
서울 각 자치구는 물론 여수시, 제주시, 대전 서구, 속초시 등이 서울시의 발표를 전후해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거나 준비 중이다. 전면 도입이 부담됐는지 다소 변형적인 도입도 눈에 띈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여성 숙직을 목요일에만 배정해, 금요일인 비번을 포함하면 주말까지 내리 쉴 수 있도록 완충장치를 두고 있다. 다른 지자체는 아예 숙직전담직원을 별도로 채용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일명 ‘목당(목요일 당직)’이나 숙직전담직원제 등이 지방자치단체가 가진 숙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성공무원 비율은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시 신임 공무원 합격자는 여성비율이 이미 60%를 넘어섰다. 단기적으로는 숙직의 위험요소를 없애 안전대책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아 숙직업무 자체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게다가 젠더 이슈만 강조되다보니 이번 정책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저출산 문제다. 국내에서 한 해 태어나는 아이는 40만명 선이 무너져 이제 32만명이 위협받고 있다. 연간 혼인건수는 30만건이 붕괴해 25만건도 위태위태하다. 총 인구 감소, 부양인구 증가, 생산인구 감소, 학령인구 감소, 지역 인구소멸 등 사회 전반에 끼칠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 낳아 기를만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임금소득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근로환경은 불안하며, 집값은 가파르게 오른다. 맞벌이 부부가 아닌 경우 주위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신혼부부의 10쌍 중 4쌍은 자녀가 없는 시대다. 더이상 육아의 문제를 부부의 문제로만 맡겨서는 저출산 사태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의 육아공무원 당직 제외는 분명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는 여성공무원을 숙직자에 포함한 것과 더불어 육아공무원을 당직에서 제외했다. 당직근무 제외대상자에 임신·출산자 뿐만 아니라 남녀 상관없이 5세 이하 양육자와 한부모 가구의 미성년자 양육자도 포함했다.
얼마 전 한 공무원에게 여성 숙직 포함에 대해 물었다. 찬성 혹은 반대의 의견을 예상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거 엄청 민감하던데요. 그래도 애들이랑 놀아줄 시간 생기니 저야 좋죠”였다. 논리의 꼬리를 잡으려다보면 때론 중요한 걸 놓치는 법이기도 하다.
당직에 대한 보상은 지금보다 강화되는 편이 바람직하다. 누군가의 박탈감을 거름삼아 얻어내는 열매는 꼭 탈이 난다. 그리고 당장 아이에게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5세 이하만이라도 부모가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부디 공직사회를 시작으로 사회 곳곳에 육아 부모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뒤따르길 희망한다.
박용준 사회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