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비교하자면 박근혜와 시몬 베유(Simone Veil)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전자는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고, 후자는 유럽연합 최초 여성 국회의장이었다. 생김새도 비슷하다. 두 사람 모두 특유의 올림머리로 우아한 실루엣을 자랑했다.
이를 제외하고 이 두 여성 정치인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이면서 ‘역사의 가해자’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베유 전 국회의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박해받았던 유대인의 딸로 아우슈비츠에서 탈출한 역사의 피해자이다. 전자는 한국 정치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고, 후자는 프랑스 국민의 존경을 받는 여성 정치인으로 파리 팡테옹(Pantheon)에 영면하고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어느 사이 한국을 분열시키는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반면 베유 전 의장은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금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다. 3개월 간 이어지는 노란조끼 운동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매주 토요일 진행되고 있는 이 운동은 14차까지 이어졌고, 노란조끼 운동을 지지하는 국민과 지지하지 않는 국민 간 분열과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이런 고난기에는 국민을 화합하고 하나로 뭉치게 하는 상징적 표상이 필요하다. 아지르(Agir, la droite constructive : 행동하라, 건설적인 우파)당의 파비엔느 켈레르(Fabienne Keller) 상원의원은 지난 12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시몬 베유 여사를 마리안(Marianne)으로 선정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마리안은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적인 조각상이다. 프리지아 모자로 머리를 장식한 여성의 반신상은 프랑스 공화국과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모토를 표현한다. 이는 프랑스 공화국,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중요한 아이콘이다. 마리안은 프랑스의 모든 시·도청과 관공서의 상석을 차지한다. 결혼식의 증인이나 주요 시민행사에는 꼭 이 반신상이 나타난다. 프랑스의 공문이나 우표, 화폐에도 등장한다.
지금까지 마리안에는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여배우들이 선정됐다. 동물 애호가로도 잘 알려진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 쉘브르 우산의 주인공 카트린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 샤넬 광고를 독차지했던 이네스 드 라 프레쌍주(Ines de La Fressange), 라붐과 브레이브하트로 스타덤에 올랐던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 등 총 7명이다.
켈레르 상원의원은 이러한 프랑스의 전통을 깨고 베유 여사를 마리안으로 선정해 국민 통합을 이루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번 달 초순 파리의 한 우편함에 베유 여사의 초상화를 그리고 그 위에 낙서와 독일 나치 상징인 철십자를 새긴 사건이 발생했다. 노란조끼 운동으로 뒤숭숭한 프랑스에 반유대주의가 다시금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켈레르 의원은 새 마리안으로 시몬 베유의 얼굴을 선정하자고 페이스북을 통해 제안했다. 이 제안은 순식간에 많은 의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마리안을 선정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대통령의 일이다. 따라서 켈레르 의원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시몬 베유는 우리 국민의 집단의식과 심장의 일부다. 그녀의 인생역정과 헌신은 많은 프랑스인에게 힘을 준다. 그녀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균형잡힌 유럽의 가치를 구현한다. 그녀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투쟁, 그리고 인권·남녀평등을 위한 투쟁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 베유의 삶은 극단주의자, 인기영합주의자들과 모든 타협을 거절하자는 호소이다.” 이 편지에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화답하지 않은 상태라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 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싼 자유한국당의 분열 양상은 한국당 내에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 전반을 분열 양상으로 이끌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발언으로 논란을 부른 김진태 의원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각종 강경발언으로 당 대표를 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같은 당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후보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FN의 창립자 장 마리 르 펜(Jean- Marie Le Pen)을 연상시키지만 우리 상황이 더 심각해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프랑스처럼 마리안을 내세워 국민통합을 이룰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수방관 할 수도 없다. 이대로 두다가는 유럽 다민족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극우정당이 출현할지도 모른다.
심히 염려된다. 하루라도 빨리 정부가 나서야 한다. 마침 문재인정부는 포용국가를 표방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정부가 여당과 함께 국민대통합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방안을 모색하라. 그 중 한 가지 방법으로 박 전 대통령 거취문제를 국민과 함께 고민할 때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