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하노이 공동선언' 합의가 불발되면서 향후 한반도 주변 정상외교 일정도 불확실해졌다.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둘러싼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등을 추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부터 4박5일간의 베트남 방문일정을 마친 김 위원장은 2일 오전 열차 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당초 광저우·상하이 등 중국 남부의 개혁개방 도시들을 둘러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면서 우한과 톈진, 선양 등을 거쳐 곧바로 평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노이 선언 불발에 따른 향후 대응방향 논의가 급선무인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나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뒤쳐진다. 3일부터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려 시 주석도 시간을 빼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열차 이동속도에 비춰볼 때 김 위원장이 탄 열차는 5일 새벽 북한 땅에 들어설 예정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일정도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 당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 혹은 그 이상의 비핵화 조치를 내놓고 미국이 남북 경제협력(경협) 재개를 상응조치로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남북 철도·도로연결과 경협사업에서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히면서 이런 가능성은 더 커졌다. 통일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첫날인 지난달 27일 남북이 철도·도로 협력 관련자료를 상호 교환한 사실도 공개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의 물꼬를 트면, 남북 정상이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김 위원장 서울답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북미 정상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남북경협은 물론 김 위원장의 답방일정도 기약 없는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연연하기보다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재개하는 방안을 찾는 데 다시 주력할 전망이다. 다시 한 번 북미 사이에서 적극적 중재에 나섬으로써 남북미 대화를 회생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5월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남북 정상이 갑자기 만났던 것처럼, 비핵화와 상응조치 문제를 주제로 한 실무 성격의 회담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도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남북관계 선순환을 위해 남북 정상이 '어떤 형태로든' 마주앉아 결과를 공유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중재"를 당부한 가운데 한미 정상회담도 조만간 열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청와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까운 시일 안에 직접 만나 심도있는 협의를 계속하자'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한다.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하자'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르면 4월 중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대북제재 해제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김 위원장이 다른 한반도 주변국 정상,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일 "대외경제상 김영재를 단장으로 하는 경제대표단이 러시아에서 진행되는 조로(북러) 정부 간 무역, 경제 및 과학기술협조위원회 9차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이날 평양을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전날에는 한만혁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러시아로 떠난 가운데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간 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러시아 정부는 김 위원장의 방러 문제가 계속 현안으로 남아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현지시간) 4박5일간의 베트남 방문일정을 마치고 베트남 랑선성 동당 역에 도착해 평양행 전용열차에 오르기 전 마중나온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