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퇴진을 선언했다. 김재철 회장은 16일 경기 이천시에 있는 동원그룹 연수원 동원리더스아카데미에서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이제 여러분의 역량을 믿고, 회장에서 물러서서 여러분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응원하고자 한다"라며 퇴진 의사를 밝혔다.
김 회장은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오랫동안 고민하다 창업 세대로서 소임을 다하고, 후배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물러날 시점이라는 판단에 퇴진을 결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에서 퇴진한 이후 그룹 경영과 관련해서는 필요한 때에만 그동안 쌓은 경륜을 살려 조언할 방침이다. 김 회장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 사회에 이바지하고 봉사하는 일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이번에 김 회장이 물러나면서 동원그룹은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 중심으로 경영이 이뤄질 예정이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지주회사인 엔터프라이즈가 그룹의 전략과 방향을 잡고 각 계열사는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독립경영을 하는 기존 경영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실습항해사로 시작해 약 3년 만에 1963년 동화선단 선장이 됐다. 이후 김 회장은 고려원양어업을 거쳐 1969년 4월16일 서울 중구 명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원양어선 1척으로 동원산업을 설립했다. 김 회장은 1989년부터 현재까지 동원그룹 회장을 맡았다. 또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동원증권 사장,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동원금융지주(현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등도 지냈다.
동원그룹의 모태인 동원산업은 1982년 국내 최초의 참치 통조림인 동원참치를 출시했다. 동원참치는 출시 이후 현재까지 한 줄로 늘어놓았을 때 지구 12바퀴 반을 돌 수 있는 양인 62억캔이 넘게 팔리면서 국민 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동원그룹은 2000년 종합 식품업체인 동원F&B를 설립했으며, 현재 수산, 식품, 패키징, 물류의 4대 축을 바탕으로 지난해 기준 연 매출 7조2000억원에 달하는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김 회장은 이날 기념식에서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승자의 길이라는 것을 늘 유념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정도 경영으로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이와 관련해 지난 1991년 장남 김남구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62억3800만원의 증여세를 자진해 냈다. 당시 사례는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자진 신고한 증여세로는 김재철의 62억원이 사상 처음'이라고 언론에 밝혔을 정도로 유명하다.
또 김 회장은 임직원에게 독서를 강조하는 등 이른바 '독서 경영'으로도 잘 알려졌다. 임직원뿐만 아니라 두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1주일에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A4용지 4장~5장 분량의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김 회장은 두 아들에게 북태평양 명태잡이, 참치 통조림 제조공장 생산직, 영업사원 등 현장을 두루 경험하도록 했다.
원양어선 선장 때부터 고향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김 회장은 창업 10년인 1979년 자신의 지분 10%를 출자해 장학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했다. 동원육영재단은 어린이에게 책을 나눠주는 '책꾸러기 캠페인'과 대학생 대상으로 전인교육 강좌를 진행하는 '라이프 아카데미'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한다. 동원육영재단이 40년간 투자한 금액은 420억원에 이른다.
16일 경기 이천시에 있는 동원그룹 연수원 동원리더스아카데미에서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김재철 회장이 기념사하고 있다. 사진/동원그룹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