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콧대 높은 미국 음악이 외국, 그것도 아시안 그룹을 얼굴로 내세우려 한다는건 보통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BTS: 더 리뷰'의 저자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1일(현지시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2019 빌보드 뮤직 어워즈(BMA)'의 본상 수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이날 소셜미디어(SNS)에 "한국 대중음악이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뻗어나간 이래 미국 팝의 주류시장 중심부에서 그 성과를 공인받은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더구나 한국 그룹이 한국어로 된 음악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새로운 전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날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본상 격인 '톱 듀오·그룹' 부문을 수상한 건 향후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큰 족적으로 평가된다. 'BTS 현상'이 세계 음악계의 지형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해석으로 읽혔다는 점에서다. 단순히 소셜미디어(SNS) 상의 인기 정도로 평가절하됐던 기존의 의미적 한계를 그룹은 이날 완벽히 뛰어 넘고, 새롭게 증명했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는 그래미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등과 함께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으로 통한다. 본상 격인 '톱 듀오·그룹' 부문은 단순한 인기보다는 빌보드 차트 기록의 상업적 성과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원디렉션(2015~2016년), 트웬티 원 파일럿츠(2017년), 이매진 드래곤스(2018년) 등이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방탄소년단이 이 부문 후보로 지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탄소년단. 사진/뉴시스·AP
당초 그룹이 본상 격인 이 상을 수상할 것인지를 두고서는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앨범의 완성도를 논외 하고라도 영어 외 다른 언어로 제작된 앨범인 만큼 불리한 점이 작용할 것으로 점쳐졌기 때문이다. 마룬 파이브와 패닉 앳 더 디스코, 댄&셰이, 이매진 드래곤스 등 올해 함께 노미네이트 된 경쟁자 면면도 화려했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그동안 소위 미국 내에서의 'BTS 현상'이 탑 소셜 미디어 상 등으로 이미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소셜미디어(SNS)의 인기 정도로 현지의 열기나 반응을 과소평가하는 면도 없지 않았다"며 "빌보드의 주요 부문의 수상으로 그 실체(BTS 현상)가 온전히 확인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이번 수상의 의의를 평가했다.
이날 '빌보드 뮤직 어워즈' 국내 방송의 사회를 맡은 강명석 음악평론가는 "올해는 시상식 전부터 방탄소년단에 대한 빌보드의 달라진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며 "시상식 전부터 방탄소년단과 함께 협업한 가수들을 거론한 기사를 내거나 광고에 등장시키는 등 '헤드라이너' 급의 대우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날 '빌보드 뮤직 어워드'는 시작부터 끝까지 'BTS 현상'의 증명이자 확인이었다. 이날 본상 지명에 앞서 빌보드는 그룹의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 사실을 밝혔다. 그룹이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자가 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룹은 지난 2017년과 2018년 국내 가수 최초로 이 상을 수상했었다. 올해는 엑소와 갓세븐, 아리아나 그란데, 루이 톰린슨과 후보로 올랐다. 지난해 한해 빌보드 '소셜 50' 차트에서 90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통산 120번째 1위를 기록한 만큼 발표 전부터 올해 3번째 수상이 유력했었다.
본상 수상 이후에는 세계적인 팝스타 할시와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 : 페르소나'의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 합동 무대를 꾸몄다. 이 무대는 시상식 15개 공연 중 14번째에 배치 됐다. 마돈나와 머라이어 캐리, 켈리 클라크슨 등 세계적인 팝스타 무대 이후 순서이자 피날레 폴라 압둘의 바로 전 순서였다.
켈리 클라크슨은 이날 이들의 무대에 앞서 "이 슈퍼 그룹은 오늘 벌써 2회나 수상했다"며 "이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대단한 스트리밍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오늘 라이브로 월드 프리미어 무대를 선사할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무대에선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보는 미국 연출진의 시각도 달라졌음이 감지됐다. 지난해 BMA 출연 당시 방탄소년단의 '페이크 러브(FAKE LOVE)' 무대 때 카메라는 그룹보다도 그들을 연호하는 팬들을 비추는 데 집중했다. 올해도 객석을 두루 비추기는 했지만 그보다 아티스트로서의 방탄소년단과 할시를 조명하는데 비중을 상대적으로 크게 뒀다.
강명석 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을 어떤 하나의 현상보다는 아티스트 자체로서 본 것 같다"며 "지난해까지 아시아에서 온 그룹, 그 반응의 신기함을 다뤘다면 올해부터는 그들을 음악 산업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무대 이후 말했다.
이날 기립한 객석 팬들은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앞소절 한국어 응원구를 모두가 따라불렀다. 눈물을 글썽이고 입을 손으로 가리고 뛰는 팬들도 있었다. 한국어로 '김태형'이란 팻말을 흔드는 팬도 화면에 잡혔다.
이날 방탄소년단 외에도 '빌보드 뮤직 어워즈'는 현재 세계음악 산업의 중심을 살펴볼 수 있는 시상과 무대로 채워졌다. 테일러 스위프트, 머라이어 캐리, 폴라 압둘로 이어지는 무대로 '80년대 이후 여성 팝 아티스트'의 계보를 한 눈에 살펴줬다.
대상 격인 '톱 아티스트'를 비롯해 '톱 남성 아티스트', '톱 빌보드 200 앨범' 3관왕에는 드레이크가 선정됐다. 강명석 평론가는 "지난해 어마어마한 빌보드 차트 성적으로 볼 때 이견이 없는 수상 결과"라며 "팝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팝 2.0' 시대를 연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신인상인 '톱 뉴 아티스트'에 주스월드, '톱 여성 아티스트'와 '공로상'에 아리아나 그란데, '톱 핫 100 송'에 마룬5와 카디 비, '톱 R&B 아티스트'에 엘라 메이, '톱 컨트리 듀오/그룹 송'에 비비렉사&플로리다 조지안 라인, '톱 록 아티스트'에 이매진 드래곤스, '아이콘 어워드'에 머라이어 캐리 등이 선정됐다.
방탄소년단. 사진/뉴시스·AP
이날 시상식을 마친 방탄소년단은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정말 믿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아미와 이 자리에 함께 있는 멤버들에게 모두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며 "많은 분들의 함성과 응원으로 최선을 다해 무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앞으로 시작되는 스타디움 투어에서 멋있는 무대 많이 보여드리겠다"고 전했다.
그룹은 5월4∼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시카고와 뉴저지를 거쳐 브라질 상파울루,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일본 오사카와 시즈오카 세계 8개 지역에서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LOVE YOURSELF : SPEAK YOURSELF) 스타디움 투어를 개최한다.
특히 특히 영국에서는 9만석 규모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한다. 이 곳은 영국 밴드 퀸이 참여한 1985년 역사적인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가 열렸던 공연장이다. 비틀스, 마이클 잭슨, 오아시스, 에드 시런 등 세계적인 록·팝스타들이 이 곳에서 공연을 한 바 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