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의 알고보면 쓸모있는 블록체인)타이밍의 과학

입력 : 2019-06-18 오전 6:00:00
얼마 전 한 후배와 수다를 떨다가, 일이나 투자나 참 어렵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했더니 며칠 뒤 후배가 택배로 책 선물을 보내왔다. 그런데 보내온 책이 경제분야 책이 아니라, 야구에 관한 책이었다. '타격의 과학'이라고 테드 윌리엄스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메이저리그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주 유명한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타자고, 아메리칸리그에서 6번이나 타격왕을 차지했고, 출루율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인 타자였다.
 
"수천 번 되풀이해 말하지만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서 야구공을 때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 책은 그 "어려운 일"에서 최고가 되는 비결을 담고 있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첫 번째 비결이 "좋은 공을 골라서 치라"는 거다. 정작 "배트 스피드를 빠르게 하라"는 운동 스킬에 대한 이야기는 세 번째 비결에나 나온다(두 번째 비결은 "적절한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저자가 한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아무리 좋은 스윙을 하는 타자도 좋은 공이 오는 타이밍을 노리지 않으면 공을 때릴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업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디어랩의 창립자이자 연쇄창업가인 빌 그로스가 테드(Ted) 강연에 나와 주장한 사업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도 타이밍이었다. 그 Ted 강연에는 유튜브 얘기가 나오는데, 빌 그로스에 따르면 유튜브는 사업 시작 시점이 절묘했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용자들이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보기에 적절한 타이밍이 도래했을 때 서비스를 선보인 셈이다. 유튜브 이전에도 많은 회사들이 우수한 기술력으로 인터넷에서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인터넷 환경으로는 동영상 콘텐츠를 쾌적하게 즐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튜브는 최초의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개발해 낸 회사가 아니다.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나고, 최초로 아이템을 시도한 회사가 시장에서 승리한 게 아니다.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시장을 공략한 플레이어가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 위에서 응용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디앱(DApp)팀 중에서도 과거에 이미 시도한 적 있었던 아이템에 도전하는 팀들이 있다. 예를 들어 썸씽(somesing.io)이라는 팀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초기에도 있었던 노래방 서비스를, 스테이지(stayge.net)라는 팀은 아이돌의 팬커뮤니티를, 위블록(webloc.io)은 보상형 광고 서비스를 내놓았거나 곧 내놓을 예정이다. 이들 아이디어는 모두 예전에도 있었던 시도였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블록체인 플랫폼이 적용되면 과거 시도에서 극복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음을 포착했다.
 
노래방 서비스는 관련 권리자들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유료서비스가 될 수밖에 없는데, 사용자에게 비용 청구를 해서는 서비스를 대규모로 확산시키기 어려웠던 것이다. 썸씽은 이를 토큰이코노미로 풀어 사용자가 비용 부담을 적게 느끼거나 혹은 수익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스테이지도 아이돌과 팬 사이의 커뮤니티 활동에 토큰을 활용함으로써 경제적 부담을 감소시키고, 초기 열성 참여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서 지속성을 갖도록 서비스를 설계했다. 위블록은 광고주의 보상이 중간 매개자의 수수료로 많이 나가 최종 사용자에게 덜 지급되는 문제를 블록체인 플랫폼에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매개자에게 갈 몫을 사용자에게 되돌려 주어 경쟁력을 높인 것이다. 이들은 블록체인 기술로 과거에 풀지 못한 문제를 풀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마치 빨라진 인터넷 환경이 유튜브에게 최적의 사업 타이밍을 제공했던 것처럼, 블록체인 환경은 기존의 사업아이템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사업은 야구가 아니다. 타자는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공 4번을 골라내면 스윙 없이 출루할 수 있지만, 사업은 최고의 타이밍을 마냥 기다릴 수가 없다. 야구보다 더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이미 타이밍이 성숙되었음을 확인한 이후에는 기회가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과거에 존재했던 아이템이지만 풀지못한 문제가 있었던 아이템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예전에 다 해봤는데 안돼', '그거 예전에 누가 해봤는데 안되는거야'라는 생각으로는 유튜브가 잡았던 사업타이밍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전에 없던 기술이 만들어내는 환경이 지금도 여러 사업 아이템에 최적의 사업 진입 타이밍을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용준 아이콘루프 사업개발담당이사(yj@icon.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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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