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끊임없는 의료기술 향상에도 불구하고 암은 여전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꼽힌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 암 환자는 지난 2013년 이후 21만~22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암 환자 생존의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사용되는 5년 상대생존율은 지난 2012~2016년 70.6%로 이전 5년(54%) 대비 눈에 띄게 늘었지만 여전히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생명과 생계를 위협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근본적 치료제 개발이라는 과제를 남겨둔 암은 그 치료만큼이나 생존자의 사회 복귀 역시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불규칙한 몸 상태와 언제 건강이 다시 악화될지 모른다는 환자의 불안감을 비롯해 주변인들의 편견으로 인한 우울감 등 암 생존자의 사회 복귀는 환자 본인은 물론 사회적 노력까지 요구되는 문제다. <뉴스토마토>는 노동영 대한암협회장을 만나 국내 암 생존자 현황과 효율적인 사회 복귀를 위한 과제 등에 대해 들어봤다.
노동영 대한암협회장. 사진/대한암협회
대한암협회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한다.
대한암협회는 지난 1966년 창립총회 이후 사단법인으로 설립된 곳으로 암 퇴치사업을 통한 국민보건 복지향상을 목표로 하는 단체다. 전국 암 예방강연회와 어린이 흡연예방교육 프로그램 교육, 유방암 예방(핑크리본) 캠페인, 대장암 예방(골드리본)캠페인, 여성암 예방(퍼플리본)캠페인, 식생활지침 연구 사업으로 항암식탁 프로젝트, 힐링레시피 등을 개발했고 다양한 사업을 통해 올바른 암 정보의 보급 및 확산을 위한 사업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최근 암 환자의 성공적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한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진행 배경은.
암 생존자의 경우 스스로 자신의 건강에 대해 과대 또는 과소 평가하는 부분이 있고, 이에 따라 사회에 부적응하거나 우울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환자 본인의 상태에 기인한 경우도 많지만 주변 인들의 편견도 암 생존자의 사회 복귀에 장애물이 된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국립암센터가 일반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암 생존자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일반국민 응답자 77.5%가 암 생존자는 기초체력 저하로 업무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 암 생존자가 사회에 복귀하며 겪는 신체적·심리적 어려움과 일터 내에서 마주하는 편견과 차별로 인한 아픔을 규명함으로써 사회적·기업적·개인적 차원에서 암 생존자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체감도 높게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했다.
조사는 올해 4월부터 두 달 간 사회 복귀를 준비하거나 치료와 업무를 병행 중인 암 생존자 85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서울대병원과 연세대병원을 비롯해 고려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순천향대병원, 가톨릭혈액병원, 울산대병원, 제주대병원, 국립암센터 등이 조사에 협력했다.
암 생존자의 사회적 복귀에 가장 큰 어려움이 되는 요소는 무엇인가.
크게 인식적인 측면과 제도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인식적인 측면은 실태 조사에 포함됐던 암 생존자가 일터에서 겪는 어려움과 일반국민의 인식을 비교해서 잘 나타난다. 일반국민의 경우 암 생존자들의 업무 능력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반면, 복귀자 스스로는 건강한 상태 유지 여부에 대해 가장 우려한다는 차이가 있다. 일반국민 차원의 우려가 이해는 되지만 해당 우려가 편견으로 자리 잡을 경우 어렵게 사회에 복귀한 암 생존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인식적인 측면의 변화는 문화 조성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지만 제도적인 부문은 오랜만에 사회에 복귀하는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필요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암 생존자의 사회 복귀를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은.
암 생존자 4명 중 1명은 암 투병 경험 사실을 일터에 알리지 않을 예정이거나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비공개 결정 이유는 편견(63.7%)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실제로 암 생존자의 69.5%은 일터 내 암 생존자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응답했고, 차별 내용으로는 '중요 업무 참여, 능력 발휘 기회 상실(60.9%)'이 차지했다.
암 생존자들은 일터 내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데 정책적 제도적인 개선보다 동료의 응원과 배려가 가장 크게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일터에서의 존재감 자체를 인정해주는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등의 격려가 대표적인 예다. 상대적으로 젊은층은 20~40대 환자의 경우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해'와 같이 동료가 지원해주겠다는 의지를 표현해 주는 말을 선호했고, 중장년이 될수록 암 극복 자체를 축하하는 말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격려를 해둔다며 무심코 던지는 '요즘 같은 시대 암이 별거 아니죠' 등의 이야기는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암 생존자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말(59.6%)로 집계되기도 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암이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라는 함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생존자 입장에서는 암종을 막론하고 암 자체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달라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생존자들의 심리적인 요인에 도움을 주는 것이 주변인들에게 달렸다면 현실적인 요소는 제도적 지원이 채워야 한다. 암 생존자의 생애주기적 특성과 종사 직종에 따른 차별적 어려움을 고려해 효과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영 회장(왼쪽 두번째)을 비롯한 대한암학회 관계자들이 암 환자의 성공적 사회복귀를 위한 간담회를 진행 중인 모습. 사진/대한암협회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들이 도움이 될 수 있나.
사회 복귀를 준비하고 있는 암 생존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교육 등 직업 복귀 프로그램이나 진로상담에 대한 수요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건강을 회복해 사회에 복귀는 하지만 본인의 건강 상태가 향후 정상적인 근무나 고용 유지에 지장을 주지 않을지 불안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는 복귀 후 심리적 스트레스와도 연결된다. 연령대 별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20~30대는 고용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높고, 어느 정도 직책이 있는 40대는 복귀 이후 업무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은 식이다. 50대는 상대적으로 업무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는 낮아지지만 우울과 무기력감이 높아진다.
때문에 앞서 말했듯 생애주기적 특성을 고려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2030세대에는 신규 구직을 비롯한 진로 상담프로그램이나 결혼 및 육아가 시작되는 시기인 점을 고려해 퇴근 후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가사 도우미 지원 등이 요긴하다.
2030세대도 마찬가지지만 40대의 경우 치료 기간 동안 고용보장과 산정 특례 기간 연장 또는 생계비 등의 경제적 지원, 치료·검진과 근무를 병행하기 위한 유연 근무제 등이 더욱 절실한 편이고, 심리적 요인이 중요한 50대는 운동과 심리치료 등의 재활프로그램 지원이 도움이 될수 있다. 60대 생존자들은 은퇴 연령대가 많고, 재직 중이라고 해도 체력적으로 부치는 시기라 검진비용이나 일터와 병원과의 먼 거리 등이 부담이 되는 시기다. 때문에 접근성 높은 1차 의료기관 증설과 생계부양자 취업 우선 지원책 등이 필요하다.
이를 비롯해 정부 차원에서 이미 추진하고 있는 제도들은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고, 어려움이 심각한 특정 연령대의 암 생존자 집단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제도적 보완을 추진하는 등 암 생존자들을 위한 장기적인 제도 개선 로드맵을 갖춰나가야 한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