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일본의 대한국 수출제한 조치와 관련해 "우리의 외교적 해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비상 상황"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민관 비상 대응체제 구축'을 30대 기업 총수들에게 제안했다. 기업인들도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2시30분까지 삼성, LG, 현대, SK 등 자산 규모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 집단) 총수 및 최고경영자(CEO) 등 경제계 주요 인사 34명과 간담회를 하고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고 민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도 화답해 주기를 바란다.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주요 그룹 최고경영자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김상조 정책실장이 상시 소통체제를 유지하고, 장·차관급 범정부지원체제도 운영하는 '민관 비상 대응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단기적 대책으로 △기업의 수입처 다변화 등 적극 지원 △관련 행정절차 최소화 및 신속진행 △ 관련 예산 추경 반영 등을, 근본 대책으로는 △부품·소재, 장비산업의 육성과 국산화 예산 대폭 확충 △세제와 금융 등 가용자원 총동원 등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아베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언급하고 이번 사태의 장기화를 예상하는 건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가 자국의 정치일정과 맞물려 있어서다. 오는 21일 일본에선 참의원 선거가 열리는데, 아베 정부가 보수여론 결집을 위해 수출제한 조치를 들고나왔다는 분석이다. 아베 정부는 이번 선거 기세를 몰아 중의원 선거까지 휩쓸어 평화헌법 개정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이 내달 첨단재료 등 수출 우대제도인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삭제할 경우 한일 분쟁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문 대통령은 이같은 장기전에 대비해 민간의 협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만으로는 안 되고, 기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부품·소재 공동개발이나 공동구입을 비롯한 수요기업 간 협력과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는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해주시기 바란다"고 총수들에게 요청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자"며,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단기·중장기적 대처를 해 나가는 데 뜻을 모았다. 기업인들은 "중장기적으로 이번 조치가 양국 간 경제 협력 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민간 차원에서도 총력을 다해 설득해 나가겠다"고 밝혔고, 국내 부품 산업 육성과 관련해 정부의 장기적 안목과 긴 호흡의 지원을 당부했다.
간담회를 마무리하면서 문 대통령은 "최대한 정부가 뒷받침하겠다"면서 "대외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주요 기업 간 공동기술 개발, 대·중소기업 간 부품기술 국산화 협력 확대 등을 통해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문 대통령과 대기업총수 간 간담회는 지난 2017년 7월 호프미팅과, 지난 1월 '기업인과의 대화'에 이어 3번째다. 청와대는 이날 참석한 기업 관계자의 발언 등 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진 않았다.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는 물론, 일본 정부가 참석기업에 불이익을 줄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10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인사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