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협동조합 '노느매기'는 2013년 주거 취약계층의 자립·자활을 위해 창립된 조직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서로 모여 관계를 맺고 꿈과 희망을 꾸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하나를 여러 몫으로 나누는 일을 뜻하는 순 우리말인 노느매기에 협동조합이 지향하는 비전이 담겨 있다. 노느매기를 처음 이끈 이는 지난해 11월 별세한 고(故) 김건호 목사다. 목회자이자 도시빈민운동가였던 김 목사는 영등포산업선교회 '햇살보금자리' 센터장을 지냈으며, 이후 주거 취약계층들의 자립을 위한 조직으로 노느매기 설립을 주도했다. 현재 박상호 이사장(
사진)을 중심으로 노느매기 2기 준비를 위해 한창이다. 박 이사장을 만나 노느매기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노느매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2013년에 김건호 목사님이 주거 취약계층들이 머무는 보호시설인 '햇살보금자리' 센터장으로 있었다. 목사님이 시설을 이용하는 분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센터장을 그만두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제안이었다. 복지혜택만 받는 대상으로 언제까지나 만족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시설을 떠나서 자신들의 욕구를 펼치고 서로 돕고 스스로 개척해 살아나가자는 취지가 노느매기의 출발이 됐다. 노느매기는 처음 재활용 매장으로 시작했다. 주거 취약계층이 임대주택이나 고시원에 독립해 거주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싸게 구입하는 데 도움이 됐다. 2013년 6월 노느매기 창립총회가 열렸고 또 영등포구 마을기업에 선정됐다. 재활용가게 '햇살나무' 개장을 시작으로 재생식용유를 활용한 EM(Effective Microorganisms·유용 미생물) 비누를 만들어 판매했다. 조합은 취약계층 남성 독신가구들이 대부분이다. 조합원 전체 규모는 80명가량 된다.
김건호 목사는 어떤 분이었나.
목사님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다. 아낌없이 계속 받아주고 기다려주는 분이었다. 목사 이전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빈민운동가였다. 대학 졸업 후 산동네인 신림동 신양교회 부교역자로 지역 아동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같이 밥을 차리고 같이 먹고 같이 치우는 '밥상모임'을 강조하셨다. 눈치 보면서 밥 먹는 분들에 대해 굉장히 마음 아파하셨다. 혼자서 증발해버리는 죽음에 굉장히 고통스러워하셨다. 이 땅에 왔다갔다는 흔적도 없이 증발하는 이름도 없는 죽음 말이다. 조합 설립 전 시설에 있을 때만 해도 선생님들은 서로 이름을 잘 모르는 관계였다. 'TV 앞에서 자는 형님', '바둑 두는 형님' 등 이름 없는 관계들로 만나 머물거나 떠났다. 노느매기를 통해서는 관계를 만들어 서로 이름을 알게 되고 관계를 맺었다. 같은 맥락에서 밥상을 중시하셨다. 눈칫밥 먹는 거 너무 마음 아파하시니까 우리가 서로를 대접하는 밥상을 마련해보자 해서 밥상모임을 하면서 조합원들과의 관계가 많이 회복됐다.
지난해 노느매기와 목사님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 나왔다. 출판은 목사님이 '햇살보금자리'에 있을 때 시작한 사업의 연장선이었다. 시설을 이용했던 분들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자서전 사업을 목사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인터뷰를 꾸준히 기록해 3권의 책이 나왔고, 목사님이 노느매기와 자신의 이야기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어 4번째 출간으로 이어졌다. 목사님은 책이 완성되기 전인 지난해 11월22일 갑작스럽게 암 발병 후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노느매기의 수익사업은 무엇이 있나.
EM 제품 제조·판매사업이 있다. 구청을 통해 몇 군데서 재생식용유를 지원받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EM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많은 미생물 중 사람에게 유익한 미생물 수십종을 조합, 배양한 것을 말한다. EM 다기능비누는 노느매기의 대표 제품이다. 폐식용유를 이용해 만든 재활용비누로, 세척력이 우수하고 EM이 들어가 항산화 작용을 하고 보습력이 좋아 맨손으로 써도 손이 상하지 않는다. 주방 세제는 물론 세탁, 화장실 청소에도 사용 가능한 비누다. EM주방비누, 때비누 등 다양한 EM비누가 있다.
재활용가게 '햇살나무'는 지역사회와 교회, 기업 등에서 기증받은 물품(재활용품, 기증물품)을 손질해 저렴한 가격에 되파는 사업이었다. 자원의 순환과 환경 사랑을 실천하고 이를 통한 수익금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제공, 마을 정착, 자립을 지원하는 나눔과 순환의 가게다. '햇살나무'는 재활용매장이 수익을 확장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올해 4월 리퍼브제품을 판매하는 반값매장으로 리뉴얼 오픈해 운영하고 있다.
파주 농사공동체 사업도 있다. 노느매기는 창립부터 꾸준히 텃밭 소모임을 이어왔다.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으로 문래동 등지에서 텃밭소모임(2016~2017)을 진행했다. 텃밭모임은 파주에서 농사로 이어졌다. 지난해 파주 파평교회에서 기증한 농지를 활용해 서리태 콩, 옥수수, 배추, 무 등의 다양한 품종을 경작했다. 현재 양봉 기술 훈련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파주 통일촌에서 아카시아와 찔레꽃 등이 담긴 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소규모 매출도 발생했다.
단기, 중장기 계획은 무엇인가.
김건호 목사님의 빈자리가 크게 다가왔던 건 사실이다. 목사님과 함께 했던 시간이 노느매기 1기였다면 이제 2기로 나아가야 할 때다. 계승과 발전이다. 목사님이 다져놓았던 것을 토대로 일자리를 더 만들고 수익을 내야 한다. 친목만 다지는 게 협동조합이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내용을 채우는 일이 중요한데, 조합원들 스스로 사업을 운영하고 스스로 고용될 수 있는 활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현재 '햇살보금자리' 사회복지사로도 일하고 있는데, 그만두고 노느매기에 전념할 생각이다.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다.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양봉사업을 하나의 일자리 창출 루트로 만들 계획이다. 또 하나는 집수리 사업과 관련해 고민하고 있다. 자치구마다 희망의 집수리 사업이 있다. 저소득층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영등포구에서는 노느매기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조합원들이 서로 모이면 집 한 채 지을 수 있는 분들이다. 다들 일용직 경험이 많다. 영등포구에서 하는 주민기술학교에 노느매기 조합원 선생님이 강사로 참여하기도 했었다. 욕실 리모델링 관련 강의였다. 실력이 엄청 좋아 조합원들이랑 함께 나가 교육 훈련을 이끌어주셨다. 작년, 재작년 도배, 열관리 등 집수리 관련 자격증을 공부하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따게 되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M비누와 관련해서는 재생식용유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과 제조, 건조 등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가 예정돼 있다. 부족하지만 지켜보고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내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뜻을 마음에 항상 새기고 있다.
'노느매기' 조합원들이 제조, 판매하는 EM비누 제품들. 사진=이우찬 기자
리퍼브제품을 파는 햇살나무 가제 전경. 사진=이우찬 기자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