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오는 10일을 끝으로 평의원 신분으로 내려오게 되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지난 1년은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 부재의 시기였다는 평가다. 나 원내대표는 일찌감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협상에서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지난 4월 국회를 동물국회로 만드는 데 일조했고, 한때 '김정은 수석대변인', '달창'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하며 여야 대립을 더욱 격화시켰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11일 총 103표 중 68표를 얻어 한국당 새 원내사령탑에 선출됐다. 예상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나 원내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친박(친박근혜)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이는 선거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 판사 출신에 전국적 인지도까지 겸비해 '스타 정치인'으로 불리는 만큼 당 안팎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4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을 나와 의원총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나 원내대표는 선거제 개편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 협상 과정에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3월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은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는 약속을 깨고, 의원 정수를 27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제를 없애는 내용의 선거제 개편안을 내놓아 여야 4당을 당황하게 했다. 정치권에선 나 원내대표가 선거법 협상안을 내놨지만 여야 4당이 전혀 논의할 수 없는 방안이어서 어깃장을 놓는 것과 다름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강경 투쟁에 나서며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당과 여야 4당 의원 간의 육탄전이 펼쳐진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이 벌어졌다. 20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 '동물 국회'라는 오명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당은 국회 폭력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소속 의원 60여명이 국회선진화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나 원내대표의 도를 넘어선 '거친 입'도 거듭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 5월 대구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장외집회에서 '문빠' '달창' 등 극우 성향의 누리집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하하려고 만든 용어를 사용해 물의를 빚었다. 또한 나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지칭하는 등 거친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4월25일 국회 의안과 앞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제출을 위해 막기 위해 당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당이 성과로 꼽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낙마 때도 나 원내대표는 실축을 했다. 조 전 장관 인사청문특별위원회 태스크포스(TF) 팀에 표창장과 상품권을 수여한 데 이어 패스트트랙 충돌 관련 수사를 받은 의원들에 대해 내년 총선 공천 때 가산점을 주겠다는 발언까지 하면서 당내 비판을 샀다. 결정타는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내민 필리버스터 카드였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막기 위함이었지만, '민식이법' 등 민생법안의 발목을 잡은 꼴이 되면서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한국당 최고위가 나 원내대표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이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 원내대표의 부적절한 언행에 이은 투쟁 일변도 전략에 비판 여론이 제기되자 당 지도부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관측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4일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나 원내대표의 존재감은 전임 원내대표보다 훨씬 강했지만 이게 오히려 한국당과 보수진영 전체에는 전략적으로 문제가 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임기 연장 불가 결정을 내린 전날 최고위원회의 의결에 승복하기로 했다. 그는 "의원총회에서는 임기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며 "권한과 절차를 둘러싼 여러 의견이 있지만, 오직 국민 행복과 대한민국 발전, 그리고 당의 승리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강석호 의원에 이어 유기준 의원이 이날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2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본회의 관련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