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고속도로에 인접한 과수원에 있는 과일나무의 생육이 부진해 수확량이 감소한 것은 자동차 매연과 제설제 성분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한국도로공사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도로공사가 서모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하고, 도로공사가 서씨에게 22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가 설치·관리하는 영동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매연과 원고가 살포한 제설제의 염화물 성분 등이 피고가 운영하는 이 사건 과수원에 도달해 과수가 고사하거나 성장과 결실이 부족하고, 상품 판매율이 떨어지는 피해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이는 통상의 참을 한도를 넘는 것이어서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며 "원심이 비록 원고의 가해 행위의 위법성 인정 여부에 관해 명확히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원심은 이러한 위법성이 인정됨을 전제로 원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영동고속도로 인천 기점 강릉 방향 약 80㎞ 지점 남쪽인 경기 이천시 부발읍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서씨는 지난 2011년 7월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수면을 방해받고, 매연과 제설재 사용으로 과수가 고사하는 등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중앙환경분쟁위원회에 손해배상 재정신청을 했다.
중앙환경분쟁위원회는 소음으로 인한 손해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매연과 제설재 사용으로 인한 피해를 인정해 서씨에게 88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재정결정을 내렸다. 도로공사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서씨도 도로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은 도로공사의 청구를 기각하고, 서씨가 요구한 22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피고 소유의 이 사건 과수원 중 고속도로 부근에 식재된 과수의 생육이 불량해지고, 급기야 고사에 이르러 수확량이 감소하는 피해가 발생한 것은 원고가 관리하는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자동차 매연과 원고가 사용한 제설재의 비산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고는 영동고속도로의 관리자로서 이 사건 과수원 과수의 고사와 수확량 감소에 따른 피고의 재산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9월11일 오후 경찰 헬기에서 바라본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잇는 신갈JC 인근 양방향 구간이 원활한 소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면서 "지속해서 발생하는 자동차 매연은 도로변 과수나무의 광합성 작용을 방해하고, 효소작용을 저해해 과수의 생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또 제설재에 함유된 염화물은 식물의 내한성 감소와 수분 흡수 저해, 광합성 작용 방해로 과수의 생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심하면 제설재 사용 종료 후 8년까지 과수를 고사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결 이유를 제시했다.
이어 "이 사건 과수원 중 고속도로에 가까운 1열과 2열에 식재된 과수목에서 생산된 과수의 상품 판매율은 5%에 불과하지만, 3열 이후에 식재된 과수목에서 생산된 과수의 상품 판매율은 95%에 달해 1열과 2열에 식재된 과수의 피해가 뚜렷하다"며 "원고가 지난 2009년도 제설재의 사용을 급격하게 증가시킨 이후에 피고가 과수 피해를 호소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도로공사는 1심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도 원고 패소 판결과 손해배상 책임을 그대로 유지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도로공사가 살포하는 제설제가 서씨의 과수원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감정 결과가 추가 증거로 제출됐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