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욱 변호사의 블록체인 법률이슈 진단)규제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는 미래도 없다

입력 : 2020-01-22 오전 6:00:00
법이 없는데 법률이슈를 다룬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법조인들이 이러한 황당한 일을 수년째 해오고 있다. 단순 사기 사건에서 유사수신, 외국환거래법 위반, 파산, 회생 사건에 이르기까지 블록체인, 암호화폐와 관련한 수많은 사건이 현재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에는 여전히 블록체인 기술 또는 이를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코인을 위한 법률은 없다
 
비트코인이 화폐인지 자산인지 수년째 연구하고 논의했지만, 그 누구도 명쾌히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 가상통화, 가상화폐, 암호화폐, 암호화자산 등 부르는 명칭이야 수십 개가 되지만, 법적으로 정확히 무엇이라 할 것인지 우리는 아직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정부의 ICO 전면금지 방침에 대한 비판적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ICO 전면금지 방침의 법적 근거는 무엇인지, 국내 ICO가 불법인지, 혹시 해외에서 ICO를 하는 것은 괜찮은지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고, 결국은 향후 명확한 법적 규율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바뀐 것은 없다.
 
국내에서 ICO를 진행하는 것이 불법인지? 암호화폐를 주고받을 때 외국환신고를 해야 하는지? 암호화폐 거래소는 아무나 설립해도 괜찮은지? 암호화폐를 활용한 자전거래, 시세조종은 불법인지? 암호화폐로 투자펀드를 구성하는 것은 불법인지? 대부업 등록을 하면 암호화폐 대출은 허용되는지? 그 누구도 쉽게 해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최근 암호화폐 거래에 대해 기타소득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근거로 세금이 부과될 수 있는지, 그것이 타당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부 기관 간에도 미묘하게 입장 차이가 있다.
 
정부에서도 그동안 수 많은 대책을 발표하기는 했다. 201792차례에 걸쳐 ICO 금지 방침을 발표하고, 20181월에는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20189~11월은 ICO 실태점검을 발표, 실시했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 본질적인 부분을 정의하거나 해결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포지티브 규제, 할 수 있는 사업은 없다
 
법률이나 정책에 허용되는 것들만 나열한 뒤, 이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을 불허하는 규제 방식을 포지티브 규제라 한다. 반대로 법률이나 정책상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든 것을 허용하는 규제 방식을 네거티브 규제라 한다. 우리 나라의 규제를 원칙적으로 포지티브 규제로 한다는 헌법상의 규정 또는 관련 법률은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우리 헌법 제119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법이 없으면 사업도 할 수 없다. 보다 엄밀하게 보면 법이나 규제가 없는 영역에서는 정부 당국자 또는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나 태도에 따라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정해지게 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블록체인, 암호화폐와 관련해서도 이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가상통화를 발행해 자금을 모집하는 행위, 소액해외송금업자들이 송금의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행위, 자산운용사에서 암호화폐 기반 펀드를 조성하는 행위 등을 원천적으로 금지할 만한 법적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사업들을 진행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법령상 소액해외송금업을 하려는 자는 일정한 등록 요건을 구비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등록을 하면 된다. 여기서의 등록 요건은 상법상 회사로서 자기자본이 10억원 이상일 것재무건전성 기준을 충족할 것전산망 연결전산설비 및 전산 전문인력의 구비외국환 전문인력 2인 이상 확보임원에게 결격 사유가 없을 것 정도이다. 외국환거래법령에 의하면 소액해외송금업의 등록 요건을 모두 갖추면 등록 신청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법령상 등록요건에 해당하지도 않는 '해외송금수단이나 방식'을 사실상 등록 요건 중 하나로 취급, '암호화폐'를 이용해 해외송금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결국 법령상 근거도 없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현재 한국의 소액해외송금업체들은 암호화폐, 블록체인 기술 등 새로운 송금 수단을 활용한 해외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선을 그어주는 것
 
물론 무조건 규제를 하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니다. 예컨대, 아무런 사전 규제 내지 제한 장치가 없다 보니,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암호화폐 거래소가 우후죽순 난립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각종 '먹튀' 논란 등이 발생했고 일부는 현재 형사고소, 민사소송까지 진행되고 있다. 거래소에서 시세조종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자본시장법 적용이 어려워 처벌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유사수신과 관련해서도 코인 개수를 보장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과연 현행법 위반인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이와 같은 현실적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분명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법적으로 금지되는 것과 향후 법적 금지가 필요한 것의 경계는 분명하게 그어줄 필요가 있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무조건 금지하려고만 한다면 도리어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 현행법상 금지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되, 그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발생할 것이 예견된다면 관련 규제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재욱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유한) 주원의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하고 있다. 주원 IT / 블록체인 TF 팀장을 맡으며 블록체인, 암호화폐, 핀테크, 해외송금, 국내외 투자, 관련 기업형사 사건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주원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국내 대형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세종(SHIN & KIM)에서 근무한 바 있다. 아울러 정 변호사는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를 거쳐 현재 대한변호사협회 상임이사(교육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대한변호사협회 IT 블록체인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사단법인 블록체인법학회 발기인, 학술이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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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