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새 국회의장에 바란다

입력 : 2020-05-04 오전 6:00:00
이강윤 언론인
180석 초거대 여당. 4·15 총선 결과를 보고 두 가지가 떠올랐다. 박정희의 유신정우회(유정회: 대통령이 국회의석의 1/3 지명)와 노태우의 3당 야합. 둘 다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파괴하며 투표권을 차단-왜곡시킨 한국정치의 암흑기이자 흑역사다.
 
민주적이고 정상적으로 여당이 이런 의석을 차지한 건 헌정사상 더불어민주당이 처음이다. '국민들의 수구세력 대청소'로 집약되는 이번 총선은 의석 2/3를 여당에게 몰아준 선거혁명이었다. 그런 점에서 헌정사에 획을 긋는 선거이자, 주권자의 명령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21대 국회는 이 지점에서 그 책무와 정체성이 규정된다.
 
정치권은 물론 유권자 스스로도 놀란 거대 여당에 국민이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정치도 국민 수준에 맞추라"는 것이다. 새 국회 임기 개시일인 6월1일까지는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여야는 당 체제정비와 함께 원 구성을 끝내야 한다.
 
여러 면에서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20대 국회는 출발부터 파행이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패배해 1당이 아닌데도 국회의장직을 맡겠다며 무려 45일간 억지부리기로 일관했다. 결국 의장은 민주당이 맡되, 관례상 야당 몫이던 법사위원장은 여당에게 준다는 민주당의 양보로 겨우 출발했다.
 
45일간 이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 몸서리를 치며 실망하고 분노했다. 투표로 민심을 보여준지 두 달도 안됐는데 억지를 부려 국회 문도 열지 못하는 걸 보는 심정이 어땠겠는가. 우리 정치권이 고질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선거만 끝나면 정치를 정치인의 전유물로 여기고 비상식-비합리를 저질러왔다는 점이다. 21대 국회는 국민들의 고양된 민주정신과 주인의식을 깊게 새겨야 한다.
 
국회의장은 당적을 보유할 수 없다. 지난 2005년 국회의장의 소속 정당 탈당을 법으로 명문화했다. 공무원 중 유일하게 당적 보유가 허용되는 게 국회의원인데, 국회의장만큼은 당적을 갖지 못하게 한 이유는 뭘까. 특정 정파의 영향을 벗어나 중립적으로 국회를 이끌되, 의장의 권한은 국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확실히 행사하라는 취지다.
 
국회의장은 원내1당의 최다선 의원 그룹 중 계파색이 엷고 합리주의자라고 인정되는 의원이 맡는 게 불문율이다. 민주당 최다선 의원은 유일하게 6선인 박병석 의원이다. 들리는 바로는, 전반기 국회의장과 첫 원내대표의 '구도'를 놓고 당내 물밑 접촉이 활발한 모양이다. 말이 접촉이지, 자리는 하나인데 희망자가 여럿이면 경쟁이 불가피하다.
 
탈당을 법제화시킬 만큼 중립성이 강조된 국회의장을 두고 표 대결을 벌이다 자칫 잡음이라도 나온다면, 국민은 "지금 뭐가 중요한데…"라고 실망할 것이다. 불문율로 정착된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그 불문율이 사회 상규와 합리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 불문율은 존중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21대 국회의 역사성과 정체성 차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새 국회와 국회의장에게 바란다.
 
첫째, 그간 수구세력의 발목잡기로 멈칫거렸던 적폐청산을 입법화하는 것이다. 둘째, 국회의원 특권해체와 정치개혁이다. 국회 임기가 새로 시작될 때마다 논의만 무성했던 의원 특권축소나 정치개혁을 이번 만큼은 초반에 확실히 마무리지어야 한다. 셋째, 비례용 위성정당의 맹점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공직선거법 개정은 물론이고, 국회의원 정원을 포함한 전반적 국회운영에 변화된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 의원당선증 하나로 무려 100여 가지의 권한과 편의가 주어진다는 것에 대한 국민적 저항과 비판은 서로 익히 아는 일이다. 국민은 각종 특권에 대해 해체 수준의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헌 문제다. 누누이 지적되어온 '87년 체제'의 개혁이다. 시대적 변화를 담아내고 미래를 내다보는 헌법 내용과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어른이 됐는데도 초등학교 때 옷을 계속 입으랄 수는 없잖은가.
 
180석이나 되니 저절로 될 거라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다만, 추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민적 기대가 모아지는 것이다. 21대 국회 임기의 딱 중간 시점에 대선이 치러진다. 개혁의 시간은 4년이 아니라 2년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만큼이나 숙제도 압도적이다. 숙제의 해법은 첫 번째 국회의장과 원내대표에게 달려있다.
 
이강윤 언론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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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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