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국사회 '신주류'는 누구인가

입력 : 2020-06-08 오전 6:00:00
이강윤 언론인
지난 4·15 총선이 '민주당 압승'이라고들 하는데, 그 제목보다는 '통합당퇴출 본격화'라고 말하고 싶다. 동어반복이라고 하겠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수구세력(통합당)과 시류만 좇아온 철새떼를 시민들이 청소했다, 영남 지역은 제외하고. 그래서 통합당 대참패라고 표현코자 한다. 대청소 결과 통합당은 '영남-강남당'으로 고립됐다. 시민들 마음속에 촛불은 아직 계속 타오르고 있다는 걸 똑똑히 확인시켜준 선거다. 이 말은 촛불정신이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임을 힘으로 입증한 것이고, 아울러 촛불정신은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아님을 경고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이번 총선을 선거혁명으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묻지마 영남당'은 문자 그대로 환골탈태하지 못한다면, 퇴출을 면키 힘들 것이다. 몰락의 속도와, 그 과정에서의 분화 양상에 따라 퇴장 시기와 잔재물이 문제될 뿐이다. 몰락 속도는 집권세력과 중도-진보층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압도적 승리만큼이나 숙제도 압도적이다. 찍을 당이나 후보가 마땅찮아서 할 수 없이 또 민주당을 택한 사람들을 언제까지 '지지자'로 끌고 갈 수 있을까. 의석 차이는 더블 스코어지만, 득표율은 8%포인트 차이다.
 
박근혜탄핵 촛불 이후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수구세력이 4연패하자, "한국사회 주류가 바뀌었다"고들 한다. 그 신주류가 과연 '현 상태 민주당'의 확고한 지지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필자는 신주류를 '합리주의적 시민층'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들의 연원은 87년 6월 민주화항쟁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박근혜탄핵을 이끌어낸 6개월 간의 촛불에서 정점을 이뤘다. '신주류=민주당'이라는 등식은 아직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다. 민주당을 통해 수구세력을 고립-와해시키자는 '전략투표'의 결과로 보는 게 좀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합리적 시민층은 "이게 나라냐", "국민이 주인이다"라고 선포하면서 정치 전면에 확실한 주체로 등장했고, 위력은 확대 일로다. 역설적이지만 지도부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최소한 시민 수준의 정치를 갖자"라는 지점에 생각과 힘이 자발적으로 모아진 것이다.
 
그럼 '합리적 시민층'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총선을 통해 확인된 이들의 메시지는, 몰상식적-시대착오적 세력은 우리 손으로 퇴장시키겠다는 것이었고, 결과는 우리가 본 그대로다. 이들의 이념적 지향은 리버럴리즘이나 진보성향에 가깝고, 구태의연한 보수-진보 이분법이 아니라 합리성 여부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그룹이다. 최소한 평균적 시민의 수준에 걸맞는 정치, 자식 세대는 물론이고 나의 여생에서마저 후진적 정치꾼들이 설치는 걸 더는 두고보지 않겠다는 걸 '레드 카드'로 보여준 것이다.
 
신주류의 특징은 허탈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명료하다. 그러나 그 단순명료한 주장을 현실화시키기까지 너무나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수구세력이 정치권력을 고리로 금권과 결탁해 구축한 철옹성을 '내 손으로 깬다'는 결기이자, 팩트를 교묘하게 편집해 대중을 선동하는 다수 언론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팩폭(팩트폭격)'이라는 인터넷 약어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의 선거 조건이 지속된다면, 민주당-통합당 구도를 변화시키는 건 힘들어 보인다. 양당체제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양강을 구성할 자격이 한 쪽에는 완전히 없고, 다른 한 쪽은 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치제도·방식을 어떻게 바꾸면 '참 보수 vs 참 진보' 그룹의 비등한 경쟁이 가능할까. 가치 지향 정당들의 경쟁구도가 형성될 수 있을까.
 
의석 60%을 확보한 민주당에 주문한다. "180석이나 되니 저절로 될 거"라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다만, 개혁의 제도화를 추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점은 확실히 알고 있다. 21대 국회임기의 딱 중간에 대선이 치러진다. 개혁의 시간은 4년이 아니라 2년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대선 전에 주요 개혁작업의 제도화를 마쳐야 한다. 대선은 지금으로부터 22개월 뒤. 대선 10개월 전부터는 선거국면이다. 그러므로 실제 일 할 시간은 12개월, 딱 1년 정도다. 또 다시 절망하기엔 우리는 절망이 너무 많았다. △공직사회 개혁 △재벌개혁-경제민주화 △검-경-언론 개혁 △광주시민에게 한 약속 등은 최우선적으로 완수해야 한다. 180석이란 숫자가 아니라, 결기와 의지를 믿고 싶다.
 
이강윤 언론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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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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