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선언' 결실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8일 북측의 거부로 '소통불능 상태'에 빠졌다. 남북관계가 과거의 대립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노골적인 경고이자, 남측의 적극 행동을 압박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통일부 여상기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오늘 오전 연락사무소는 예정대로 북한과 통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현재 북측이 받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통화 연결 시도에 응답하지 않은 것은 2018년 9월 연락사무소 개소 이후 1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북한의 통화거부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탈북민의 전단살포 비난 담화를 발표하고 공언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폐'를 이행하는 수순으로 관측된다. 당시 김 부부장은 연락사무소 폐쇄 외에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언급했다.
연락사무소 전화선과 달리 동·서해지구 남북 군 통신선과 양측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 등은 정상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향후 9·19 군사합의 파기가 실행될 경우 양측 군 통신선이 단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연일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여론전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동족 적대시 정책이 몰아오는 파국적 후과'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우리 최고 존엄과 체제를 중상 모독하는 행위는 가장 첫째가는 적대 행위"라며 "(전단살포는) 총포사격 도발보다 더 엄중한 최대최악의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단살포로)그들이 곱씹던 약속이라는 것들이 전부 위선이고 기만술책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며 "남조선 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다. 북남관계가 총파탄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대북전단'을 고리로 압박수위를 높여가며 문재인정부의 근본적인 대북 정책변화를 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면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대남압박으로 협상력을 끌어올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뒤에서 남북관계 개선 여지를 남겨두는 일종의 '투트랙 전략'이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7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자립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 방안' 등을 논의했다. 대북전단 등 남북관계 관련 내용은 공식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화학공업은 공업의 기초이고 인민 경제의 주 타격 전선"이라며 국산 원료·자재를 토대로 한 다방면적인 생산 체계 구축, 국가적인 과학 연구 역량 강화, 인재 양성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TBS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북한이) 올해 정면돌파전으로 자력갱생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진도가 안 나갈 뿐만 아니라 지금 코로나19가 들어왔다"면서 "대내외적 상황으로 스트레스 받는 북한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화풀이 대상이 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7월부터라도 남북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들한테 주고, 북한에게도 4·27 선언과 9·19 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준비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된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들의 신속한 추진을 주장했다.
서호 통일부 차관이 지난해 6월14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