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남북관계 '긴 호흡과 원칙'보다 행동이 중요

입력 : 2020-06-16 오전 6:00:00
5000년 한민족 역사를 되돌아볼 때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한반도가 한 국가의 영토에 속해있던 시기는 사실 그렇게 길지 않다. 기껏해야 조선왕조 500년 정도다. 고조선의 영역은 요동 중심이었고, 이후 삼국시대가 있었다. 고려시대 대동강 이북은 거란과 여진의 세력이 강했다.
 
그래서 긴 통사적 시각으로 보면 남과 북으로 갈라져 갈등하고 반목하는 지금의 한반도가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다. 어쩌면 우리 후손들은 지금을 '제2의 남북국시대'(통일신라와 발해가 병존한 200여 년간)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북한은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받지만 우리에게는 '반국가단체'이자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이기에 남북은 대립과 대화를 반복해왔다.
 
남북 집권세력이 상대방을 '반국가단체'로 취급하며 각각 '북진통일'과 '남조선 혁명론' 등으로 상대방을 압박했을 때 남북관계는 거세게 요동쳤다. 반면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상호 인정했을 때는 평화가 찾아왔다. 남북관계는 흔들리면서도 함께 전진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공동번영 등을 약속한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성과다. 그러나 화해모드였던 남북관계는 최근 다시 흔들리고 있다.
 
북미협상 난항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줬고, 여기에 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면서 총체적 난국에 몰린 북한이 과거의 거친 방식으로 돌아가 내부 체제 단속과 외부 존재감 과시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다만 문재인정부가 '한미동맹'과 '남남갈등'을 우려해 남북합의 실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남북 신뢰가 손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긴 호흡과 원칙적인 접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공수표에 불과할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셈법은 같을 수 없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위협받는 북한에 '글로벌 스탠다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눈앞까지 다가왔던 '제재 해제'가 기약없이 멀어진 좌절감을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 '기생충'에는 "부자니까 착한 것"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선악이 아닌 각자 처한 상황과 환경이 있을 뿐이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상대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파국을 막을 수 있다. 상대적 여유가 있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는 적을 향한 '굴종'이 아닌 한민족을 위한 '배려'의 차원이다.
 
이성휘 정치팀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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